“남들 가지 않는 길도 소신있게 선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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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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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스티븐 호킹’ 이상묵 교수 과학영재 멘터 나서
경기과학고 후배 과학도 만나

경기과학고 1학년 학생과 멘터-멘티 결연을 맺은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이상묵 교수(오른쪽)가 4일 경기 수원시 장안구 경기과학고 도서관에서 휠체어에 앉은 채 학생들에게 진로 선택에 관해 조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 학교 전영호 교장, 천세화 박승호 군. 사진 제공 경기과학고
경기과학고 1학년 학생과 멘터-멘티 결연을 맺은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이상묵 교수(오른쪽)가 4일 경기 수원시 장안구 경기과학고 도서관에서 휠체어에 앉은 채 학생들에게 진로 선택에 관해 조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 학교 전영호 교장, 천세화 박승호 군. 사진 제공 경기과학고
“지구에 사는 60억 명이 종교, 민족, 가치관, 생활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지금 동전을 떨어뜨리면 지구의 중심을 향해 중력가속도로 떨어진다는 것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사실이잖아요? 그게 과학의 힘이에요.”

‘한국의 스티븐 호킹’ 이상묵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48)가 과학영재들의 멘터로 나섰다. 이 교수는 4일 경기 수원시 장안구 경기과학고 도서관에서 10여 명의 이 학교 학생들과 만나 “과학은 우리가 만나는 삶의 모든 문제에 답을 줄 수는 없지만 과학을 알아야만 이 세계에 대해 제대로 질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2006년 7월 교통사고로 목 아래 부위가 모두 마비됐지만 재활 노력과 첨단 장애인 보조 장비의 도움으로 2007년 3월 강단 복귀에 성공했다. 이 교수는 학생들의 멘터가 돼 달라는 경기과학고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날 후배 과학도들을 만났다. 이 교수뿐 아니라 이 학교 졸업생을 비롯해 경기과학고와 영재교육 양해각서(MOU)를 맺은 경기과학기술진흥원, 나노소자특화팹센터, 차세대융합기술원의 교수와 연구원들 106명이 이날 이 학교 1학년생 126명과 멘터-멘티 결연을 맺었다.

“교수님은 왜 해양학을 선택하셨어요?” 학생들은 각각 자신이 원하는 멘터를 미리 선택했다. 이 교수가 멘터가 됐으면 좋겠다며 손을 든 것은 1학년 8반 천세화 군(16)이다. 천 군은 이 교수를 만나 전공 선택의 계기를 물었다.

이 교수는 “고교 1학년 때 아버지께서 ‘남들이 하지 않는 해양학을 전공해 보라’고 제안하셨는데 막상 3학년이 되니 ‘해양학을 하면 돈을 잘 벌지 못하니 다른 과에 지원하라’고 만류하셨다”며 웃었다. 이 교수는 “이미 해양학에 매력을 느낀 나머지 아버지와 싸우다시피 하며 서울대 해양학과를 지원했다”며 소신 있는 전공 선택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앞으로 천 군과 e메일을 주고받는 등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진로 상담과 학습 조언을 할 계획이다. 천 군은 1시간가량 이 교수와 대화를 나눈 뒤 “교수님 말씀을 듣고 과학자가 꼭 돼야겠다는 확신을 얻었다”며 “‘진정 뛰어난 과학자가 되고 싶으면 당장은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일도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날 작은 소동도 있었다. 멘터-멘티 결연식이 진행되는 건물 2층의 강당으로 휠체어가 올라갈 수 있는 장비가 계단에 마련되지 않았던 것. 교사 여러 명이 함께 이 교수의 휠체어를 들어 옮기려고 시도했지만 휠체어가 무거운 데다 정교한 보조 장비의 파손 위험이 있어 실패했다. “죄송하지만 1층 도서관으로 모시겠다”는 학교 측의 제안에 이 교수는 흔쾌히 응했다.

이 교수는 “장애인들에게는 대학 이공계 교육의 문턱이 높아 장애가 있는 고교생들은 대부분 문과로 진학한다. 나도 장애를 갖고도 연구와 교육에 충실할 수 있는 과학자로서 역할모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경기과학고 측에 “과학에 소질이 있는 장애 중학생을 많이 받아들여 달라”고 부탁했다.

전영호 경기과학고 교장은 “학교에 장애인 편의시설을 반드시 확충하고 장애인 우수학생이 입학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답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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