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명철 기자의 인물기행]‘고딩 파바로티’ 김호중 키운 서수용 교사

동아닷컴 입력 2010-02-22 03:00수정 2010-02-22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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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조폭이 덜컥 제자로… 타고난 목소리에 질투도 났죠”
서수용 교사(오른쪽)는 영화 ‘홀런드 오퍼스’의 음악 선생 같은 분이다. 하지만 그는 모차르트를 질투한 살리에리처럼 제자의 ‘천재적 재능’을 질투한 적도 있다. 올해 한양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호중이 열창하는 모습을 더없이 대견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서 교사. 김천=서영수 전문기자

2008년 6월 어느 여름날. 경북 김천예술고 음악과장 서수용 교사는 대구 남구 대명동 한 서점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좁은 골목이었다. 10분, 20분이 지나도록 만나기로 한 학생이 나타나지 않자 그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며칠 전 대구 경북예술고에 재직하고 있는 성악담당 후배 교사가 그에게 전화를 했다. “선배. 우리 학교에 노래는 기막히게 하는 2학년짜리가 있는데 완전 꼴통 문제아라. 이번에 또 사고를 쳐 전학을 하지 않으면 퇴학당하게 생겼는데 선배가 좀 받아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일단 한번 만나 노래나 들어보자”고 했다.

30분쯤 지날 무렵, 저만치서 누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양복 차림에 덩치와 걸음걸이 행색이 완전 ‘조폭’이었다. 서 교사는 “설마 저 녀석은 아닐끼라”라고 생각했으나 가까이 온 그는 인사를 꾸벅하며 “경북예고 김호중입니더”라고 말했다. 고개로 하는 인사가 아니라 어깨로 하는 ‘조폭식 인사’였다. 위부터 아래까지 범상한 데라곤 한 구석도 없었다. 금목걸이, 금팔찌, 금반지, 팔뚝의 문신까지. 서 교사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인근 피아노 연습실로 데려갔다. 가는 도중 “아, 내가 이렇게 위압감을 느끼는데 우리 학교 학생들은 어떻겠나. 그냥 노래나 한 곡 들어보고 돌려보내자”고 마음먹었다.

호중은 서 교사에게 테스트 곡으로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에 나오는 ‘별은 빛나건만’을 부르겠다고 하더니 목도 풀지 않고 반주에 맞춰 거침없이 노래를 불렀다. 높은 음에도 거침이 없었다. 서 교사는 경악했다. “직업 성악가들도 보통 한 시간 정도는 목을 풀고 부르고, 저도 고등학교 때 10번 부르면 절반 정도는 실패하던 곡입니다.” 테스트는 한 곡으로 끝이었다. 서 교사는 순간적으로 “아. 야구나. 야를 만날라꼬 내가 이렇게 돌고 돌아 이 자리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다.

주요기사
열흘씩 무단결석하곤 전학 요구
“난 널 버리지 않겠다” 함께 눈물

노래장면 찍어 인터넷 올리자
TV출연이어 장학금 제의 봇물


김천 출신으로 1983년 2월 영남대 성악과를 졸업한 서 교사는 ‘세계적인 테너’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독일 유학을 떠났다. 아헨음대를 졸업하고 카를스루에 오페라 단원으로도 활약했다. 그러나 재능의 한계와 오른쪽 시신경 이상으로 꿈을 접고 10년 만에 귀국했다. “이만한 이력이면 교수는 몬하겠나” 하고 생각했으나 이마저 쉽지 않았다. 대학 강사 생활을 하며 김천시합창단을 지휘하던 중 이신화 김천예고 교장이 “성악과 일을 좀 봐달라”고 제의했다. 2001년 초 전임교사로 부임했지만 “내가 고등학교 선생 하려고 20년간 그 고생을 했나” 하는 생각이 늘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서 교사는 호중에게 말했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니는 성악으로 대성할 자질이 충분하다. 무단결석을 하지 않고 폭력을 쓰지 않겠다는 두 가지만 약속하면 결코 니를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호중은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다. 하지만 호중의 학교생활기록부는 ‘충격’ 그 자체였다.

학교에 돌아와 호중을 받아주는 문제를 논의에 부쳤다. 다들 고개를 저었다. 다음 날 학교에 나타난 호중의 ‘포스’를 본 다른 교사들은 “애들 다 망치겠다”며 난리였다. 이신화 교장이 단안을 내렸다. “이런 문제아를 받아서 잘 기르는 것이 미션 스쿨인 우리 학교의 할 일이다. 서 선생 책임 아래 잘 지도하라”고 힘을 실어준 것이다.

평소 대구에서 김천으로 출퇴근해온 서 교사는 다음 날 평소보다 30분가량 일찍 출발해 대명동 호중의 자취집에 들렀다.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호중을 깨웠더니 “온몸이 쑤시고 아파 학교 몬 가겠습니다”고 했다. 기싸움에서 밀리면 안 될 것 같아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로 데려갔더니 그제야 “학교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며 따라나섰다.

두 시간을 허비한 끝에 김천으로 가는 도중 흘깃 백미러를 보니 호중이 뒷자리에 누워 세상모른 채 자고 있었다. 그는 순간 “하나님! 어쩌자고 저런 개망나니한테 그렇게 뛰어난 재주를 주셨습니까. 지가 가진 재주가 얼마나 소중한지도 모르고, 지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녀석한테 왜 저런 재능을 주신 겁니까. 차라리 제게 주셨다면 하나님과 교회 이웃을 위해 헌신할 텐데…” 하는 원망이 나왔다. 서 교사는 “천재 모차르트를 향한 모범생 살리에리의 질투심 같은 심정이었다”고 했다.

호중이 김천에서 자취방을 얻기까지 6개월 동안 사제의 동행 등하교가 계속됐다. 그 과정에서 서 교사는 호중이 ‘단순 문제 학생’을 훨씬 넘어서는 ‘거물급’임을 알게 됐다. 울산에서 태어난 호중은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와 살고 있었는데 2008년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중학교 때 이종격투기 선수로 부산에서 열린 전국대회에서 우승까지 했고, 고1 때 ‘조직’에 스카우트돼 일찌감치 조폭의 세계에 몸담게 됐다. 학교생활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성악은 중3 때 울산 임마누엘 교회에서 무료 지도를 받은 것이 고작이었다.

새 학교에서 처음 한 달 동안 호중은 책상에 누워 하루 종일 잠만 잤다. 보다 못한 서 교사가 음악반 아이들과 공동회식을 통해 안면을 트게 해줬다. 나중에 호중과 선의의 라이벌이 된 모범생 이재명 군이 제일 먼저 다가갔다. 둘 사이엔 라이벌 의식이 싹텄다. “이제 됐다” 싶었다. 그러나 ‘조직의 형님들’은 생각이 달랐다. 수시로 휴대전화를 걸어 그를 불러냈다.

하지만 호중은 천재였다.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알고, 둘을 가르치면 넷을 알았다. 전학 후 50여 일이 지난 8월 말경 대구에서 열린 TBC 음악콩쿠르 성악부문에 출전해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전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학생들이 참가하는 서울 세종음악콩쿠르 남자고등부 성악 부문에서도 우승했다. 하지만 서 교사가 학교 일에 파묻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11월 열린 한 콩쿠르에서 예선탈락하자 호중은 돌연 자취를 감춰버렸다.

4, 5일 만에 통화를 했으나 호중은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대구 동신교회 성가대 지휘를 맡고 있는 서 교사는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하나님, 야를 감당하기에는 지 그릇이 너무 작은 것 같습니다. 이쯤에서 끈을 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때 마음속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너는 호중이보다 더 나를 힘들게 했었다. 정 그렇다면 나도 너를 잡고 있던 이 끈을 놓아버려도 되겠니?” 서 교사는 눈물로 회개했다.

10여 일 뒤 학교에 온 호중은 서 교사를 보자마자 “선생님 지 전학 갈랍니다”라고 했다. 배신감과 섭섭함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제 잘못이 너무 커 옛날처럼 아버지와 아들 같은 사제관계로 돌아갈 수 없어 스스로 선생님을 떠나겠다”는 것이었다. 따귀를 때린 뒤 붙들고 울었다. “내가 너를 용서하지 못할 권리가 없다. 새로 시작하자”고 했다. 호중이도 따라 울었다. 이날부터 호중은 180도 달라졌다. 겨울방학 때 서 교사는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에 나오는 ‘공주는 잠 못 이루고’ 악보를 주면서 3학년 9월경까지 부를 수 있도록 해보라는 과제를 냈다. 놀랍게도 호중은 석 달여 만에 이 노래를 어떤 기성 테너 못지않게 완숙한 표현력으로 ‘불러냈다’. 고교생으로는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2009년 5월 학교 정기연주회에서 호중은 다시 이 곡을 불렀고, 연주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한 서 교사는 ‘고삐리가 부르는 공주는 잠 못 이루고’라는 타이틀을 붙여 직접 인터넷에 올렸다. 인터넷은 순식간에 난리가 났다. 이를 본 SBS 인기 예능프로그램 ‘스타킹’에서 연락이 와 방송에도 2차례 출연해 우승을 차지하며 전국적인 스타가 됐다. 각계의 격려와 함께 몇몇 대학에서 실기 장학생 제의가 왔으나 호중은 일찌감치 한양대 음대를 선택했다. 올해 초에는 대통령 표창과 메달이 수여되는 ‘대한민국인재상’도 받았다.

서 교사는 말한다. “이제야 알겠다. 내가 왜 세계적인 테너로 크지 못했고, 교수가 되지 못했는지를. 나는 호중이를 키워내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였을 뿐”이라고. 호중은 말한다. “선생님을 못 만났다면 오늘의 나는 없다. 세계적인 테너가 돼 선생님이 못 이룬 꿈을 대신 실현하는 것만이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김범수 CD 사러간 길에
파바로티 노래 듣고 전율
조직 탈퇴로 밤새 맞기도


■ 김천예고서 만난 김호중 군

5일 경북 김천예술고 졸업식장. 연미복을 입은 세 남자가 단상에 올라왔다. 음악과장 서수용 교사(50)와 올해 서울대 음대에 장학생으로 합격한 이재명 군(19), 그리고 한양대 장학생으로 선발된 김호중 군(19). 이들이 영화 ‘미션’의 주제곡이었던 엔니오 모리코네의 ‘가브리엘의 오보에’ 성악 버전인 ‘넬라 판타지아’를 부르자 열렬한 박수와 탄성이 터져 나왔다. 1986년 개교 이래 최고로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직접 만나 본 호중은 그 또래 여느 학생과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였다. 175cm에 85kg의 당당한 ‘테너급 몸무게’다.

―클래식을 배우게 된 계기는….

“어려서부터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대중가수 김범수를 좋아해 어느 날 용돈 모은 것을 들고 음반 사러 갔다가 덩치가 크고 수염도 잔뜩 기른 사람이 낸 음반이 있어 호기심에서 들었다가 뿅 갔다. 나중에 보니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공주는 잠 못 이루고’였다. 정말 소름이 끼쳤다. 사람이 어떻게 이런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생각했고, 나도 그런 소리를 내고 싶었다.”

―고교생 조폭으로 지내면서 무슨 일을 했나.

“가게와 동생들 관리, 그리고 낚시터 공동 운영 같은 일이었다. 월급도 많았다. 구두가 17켤레, ‘마이’가 열 벌쯤 됐다.”

―폭력조직에서는 어떻게 빠져나왔나.

“연락을 끊었더니 형들이 집으로 찾으러 왔다. 어디론가 끌려가 0시부터 오전 7시까지 두드려 맞았다. 처음에는 아프더니 어느 순간부터 몸에 감각이 없어졌다. 집에 엎어져 3일 동안 꼼짝도 못했다.”

―TV를 통해 뜨고 나서 연락이 오지 않았나.

“대구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만났다. 형님이 ‘그때 왜 노래한다고 안 했느냐’고 했다. 앞으로는 좋은 일로 만나자고도 말했다. 그렇지만 이제 더는 만나고 싶지 않다.”

―하늘이 자신을 돕는다고 생각하나.

“내가 노래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라고 믿는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재주를 소중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화부 출신인 기자는 아직은 ‘미완의 대기’인 호중에게 “성악가는 10만 명 가운데 1등을 해야 세계적인 무대에 설 수 있다”고 말해줬다.

오명철 기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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