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121>‘愛人敬天’ 도전 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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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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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조직에서 성공하려면
‘여성다움’이 되레 강력한 무기
남자와 부대끼며 경쟁 이겨야

장영신 회장이 1985년 애경산업의 소비자 경품 추첨 행사에 참석했다. 합작 상대 회사에서 파견한 간부직원 가운데 여성이 보여 이채롭다. 여성이 2명이나 포함된 임원회의는 당시 한국 회사에서는 드물었다. 사진 제공 애경그룹
장영신 회장이 1985년 애경산업의 소비자 경품 추첨 행사에 참석했다. 합작 상대 회사에서 파견한 간부직원 가운데 여성이 보여 이채롭다. 여성이 2명이나 포함된 임원회의는 당시 한국 회사에서는 드물었다. 사진 제공 애경그룹
여성 임원을 키워볼 생각으로 외국에서 마케팅을 전공한 인재를 영입해 중간간부 직급에 앉히고 일한 적이 꽤 오래전에 있었다. 그는 자신의 고유 업무인 마케팅 분야에서는 좋은 성과를 냈다. 하지만 다른 부서와의 협조가 어려웠고 부하 직원을 거느리는 데도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그를 여성 임원으로 키우겠다는 계획은 실패했다. 이런 문제가 여성 모두에게서 나타난다고 보지는 않는다. 개인의 능력 문제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직원의 대부분인 남성은 진실이야 어떻든 그렇게 봐주지 않는다.

조직에서 윗사람에게 잘 보이는 건 상대적으로 쉽다. 자신이 그 일에 꼭 필요한 사람임을 인식시키고 성실하게 지시를 받아 수행하면 평균 이상의 점수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아랫사람에게 인정받는 일은 더 어렵고, 이 과정을 잘해내지 않으면 조직에서 성공할 수 없다. 아랫사람을 모욕하고 비난하고 깎아내리면 결국 자신의 성공을 막는다. 아랫사람의 실력을 인정하고 일을 믿고 맡기며, 과정과 노력, 성과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대부분의 여성 간부가 이 과정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아랫사람에게 주장을 할 때는 조용히, 그리고 위엄 있게 해야 한다. 화를 자주 내거나 신경질적인 지시를 내리면 부하는 ‘여자의 히스테리’라고 생각할 뿐 무서워하지 않으며 존경심을 잃는다. 자신을 절제하지 못하고 화를 냄으로써 스스로에게 결정적인 해를 미치게 된다. 어떤 일이 꽉 막혀 풀리지 않는다면 다른 쉬운 일부터 처리하는 방법도 하나의 요령이다. 어려운 일을 하기 위해 힘을 내려면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면 좋다. 안 되는 일에만 집착하면 귀중한 시간만 낭비한다. 이렇게 빠른 방향 전환과 포기할 줄 아는 결단 역시 여성에게 부족한 점이다.

여자도 중견간부, 고위간부, 경영자가 충분히 될 수 있고, 실제 적잖게 배출된다. 공평하고 단호하고 또 무엇이든 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아무도 상사가 여자라는 데 신경 쓰지 않는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진출해서 성공한 업종은 일부 분야에 제한된다. 여성이 진출해서 성공하기 쉬운 직종의 공통점은 대부분이 조직보다는 개인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혼자 하는 일에 진출해 성공하는 것은 엄밀하게 말해 사회적 성공으로 보지 않는다. 남자와 같이 부대끼며 경쟁하여 승진하고, 또 남자 부하직원을 잘 다루는 여자 상사가 돼야 한다. 모든 분야에서 골고루 일하며, 평등한 보직을 맡고, 중요한 위치까지 오를 수 있는 전문 직장여성이 많아져야 한다.

여성은 자기 업무 분야에 동문이나 지인이 없이 자기 혼자인 경우가 많다. 남성은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 사업을 성공시키곤 하지만 여성은 상대적으로 의논할 상대가 매우 부족하다. 나 역시 이런 면에서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 이 때문에 여성이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꿋꿋하고 건강하고 부지런함을 갖추는 게 필요하다. 지금을 살아가는 여성이 개척자 정신을 가지고 일해야만 후대의 여성이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고, 더 잘해나갈 수 있다.

내가 처음 회사에 나왔을 때는 남편이 만든 회사를 살리기 위해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각오로 일을 했다. 일을 하다 보니 이런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내가 실패하면 여성이라서 실패한다는 식으로 보일 수 있고, 이렇게 되면 전체 여성 경영인이 실패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다. 이 일은 나 한 사람만을 위한 게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런 사명감을 되새겼다.

성공하는 여성을 볼 때 아쉬운 점은 직장에서 승진을 하거나 높은 자리에 오르면서 점점 남성적으로 변하는 모습이다. 남성은 가부장적 태도로 조직을 통솔한다. 친하고 가까울수록 부하직원에게 반말이나 거친 행동도 한다. 하지만 여성은 그렇게 따라할 수 없다. 관리자가 되거나 힘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내면의 자신이 바뀌지 않는다. 일에서 진정으로 성공하는 여성은 가장 여성다움을 잃지 않은 사람이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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