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120>‘愛人敬天’ 도전 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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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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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일하는 여성의 질적 성장


기업서 ‘유리천장’ 깨는 여성 늘어
‘샌드위치’ 중간간부 역할 잘해야
비판도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

기업에서 여성 임원이 속속 배출되면서 ‘유리 천장’이 깨지고 있다. 장영신 회장은 간부 사원이 되기 위해서는 ‘잘 다스리는 법’도 배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사진은 임원과 함께 애경소재 청양공장을 둘러보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기업에서 여성 임원이 속속 배출되면서 ‘유리 천장’이 깨지고 있다. 장영신 회장은 간부 사원이 되기 위해서는 ‘잘 다스리는 법’도 배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사진은 임원과 함께 애경소재 청양공장을 둘러보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남녀차별 문제에 대한 불만을 여직원의 일괄적인 임금 인상으로 해결한 뒤 문제를 처음 제기한 여직원을 다시 불렀다. 고충은 처리해 줬으므로 인생을 좀 더 살았고 사회생활을 오래 한 여자 선배로서 조언을 하기 위해서였다.

“당신은 똑똑하고 일을 잘하지만 리더로서는 부족한 점이 있다. 보스로는 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권리를 주장하기보다는 남녀를 떠나 스스로 회사에서 인정받을 수 있게 노력해 보라”고 했다. 여자이기 때문에 단점을 정당화하기보다는 스스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조직에서는 유리하다는 취지였다. 다행히 그 여직원은 내 얘기를 진심어린 조언으로 받아들이는 눈치였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애경에는 아직 여성 임원이 없다. 임원이 될 수 있을 만큼 근무 연한을 채운 여사원이 아직 없다. 발탁 승진한 경우를 제외하고 여성이 입사 이후 줄곧 한 회사에 남아 평사원에서부터 승진해 임원이 된 사례는 다른 기업에서도 찾기 힘들다. 여성이 결혼을 하고 자녀를 출산한 뒤에도 계속 회사에 남아 일하는 문화가 한국에서 정착된 지 오래되지 않아서다.

오래전 여성 사원을 계장으로 승진시키는 데 직원들이 반발해 애를 먹었다. 내 비서 업무를 담당하는 여직원에게 계장 직급을 주려고 하자 회사 안에서 “비서면 비서지, 여자에게 무슨 계장이냐”는 반대가 나왔다. 그는 국내 유수대학을 나와 영어와 일어에 능통했으며 비서 일만 하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업무 능력이 돋보였다. 근무 연한도 충분했다. 만약 그가 남자였더라도 이렇게 반대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단순히 여자라서 맞닥뜨린 벽이라고 판단했다. 나는 반대를 무릅쓰고 그를 승진시켰다.

부장 차장 등 중간 간부 위치의 기혼 여성은 애경 안에도 적지 않다. 애경뿐 아니라 다른 기업에도 많은 여성이 중간 간부 위치에 오르고 있다. 임원으로 진입하는 ‘유리 천장’을 깨면서 ‘∼기업 첫 여성 임원 탄생’ ‘∼업계 첫 여성 임원 탄생’과 같은 언론 기사도 요즘 드물지 않게 나온다. 한국 여성의 사회 진출이 ‘양적인 성장’에서 ‘질적인 성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조직의 중간 간부 역할을 어려워하는 여성 후배가 적지 않다. 어려운 취직 관문을 뚫고 결혼 출산 등의 벽을 넘은 뒤 맞게 되는 또 하나의 관문이 중간 간부다. 회사 안팎에서 나는 이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아마도 많은 기업에 여성 임원이 드물고 역할 모델(Role Model)로 삼을 여성 선배가 적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 임원이 되려면 중간 간부로서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포기하거나 쓰러지는 여성이 적지 않다.

우선 조직에서 어느 정도 위치까지 올라 온 ‘중간의 성공’에 대해 겸손한 마음을 갖도록 권한다. 보통 사람은 조금 성공하면 우쭐해 하며 거만해진다. 하지만 그 위치에서 앞으로 얼마나 더 성공할지는 자신의 성취를 얼마나 겸손하게 생각하고 처신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본다. 또 자신의 성공에 대해 다른 사람이 기뻐해주기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 박수를 쳐주기 바라는 마음이 주위의 질시를 유발하고 자신의 위치를 흔들 수 있다. 성공을 하면 할수록 공격 받을 확률은 높아진다. 더 높이 성공하려면 공격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비판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데 활용하라는 뜻이다.

중견 사원은 어느 회사에서나 ‘샌드위치’가 된다. 윗사람에게도 잘해야 하고 아랫사람에게도 잘해야 한다. 남성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지만 여성 중견 사원에게는 더욱 중요하고 어렵다. 과거 여성 사원의 불만은 주로 “중요한 일은 맡기지 않고 잔심부름만 시킨다”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무관심하게 대한다”는 등 주로 ‘위에서 무시한다’는 내용이었다. 요즘엔 ‘아래에서 말을 듣지 않는다’는 불만도 심심치 않게 접수된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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