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점 때문에…” 반세기만에 쓴 학사모

  • 입력 2009년 8월 28일 20시 25분


"남들은 4년 만에 쓰는 이 학사모를 난 50년 넘게 걸려서 겨우 썼네요."

머리에는 백발이 성성했지만 학사모를 쓴 '할머니 여대생'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단 1학점이 부족해 졸업 문턱에서 돌아서야 했던 남영숙 씨(71·여). 올해 초 50년 가까운 세월을 넘어 학교로 복학했던 그가 드디어 남은 1학점을 이수하고 28일 연세대 대강당에서 열린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학위를 받았다.

남 씨가 연세대 캠퍼스에 발을 처음 디딘 것은 1957년. 연세대 신학과 57학번 신입생이던 그는 14명의 신입생 중 유일한 홍일점이자 연세대 신학과에 입학한 첫 여학생이었다. '신학과 여성 1호'라는 관심을 받으며 시작한 캠퍼스 생활. 하지만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던 그의 학교생활은 쉽지 않았다.

"등록금은 어머니가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며 부쳐주셨지만 숙식이나 용돈은 제 손으로 해결해야 했어요. 학교 앞 창천교회에서 내준 방에서 지내면서 주일학교 교사도 하고, 교내신문사에서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겨우 학교를 다녔죠."

하지만 4년간의 학교생활 끝에 졸업을 앞두고 있었던 1960년 겨울, 학교로부터 졸업 이수학점에 1학점이 모자라다는 통보가 왔다. 실수로 졸업 학점 계산을 잘못한 것. "교수님들은 한 학기 더 다녀서 학위를 받으라고 하셨지만 4년 동안 농사로 힘들게 학비를 대준 어머니에게 한 학기 더 다닌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는 바로 고향인 충남 예산으로 내려갔다. 졸업장을 받지 못한 충격이 컸지만 언제까지 넋 놓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곧 직장을 구했고 3년 뒤에는 가정을 꾸렸다. 5남매를 키우다 보니 세월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하지만 아깝게 놓친 졸업장에의 미련은 늘 그의 가슴 한 켠에 남아 있었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딸이 알아챘던 것일까. 딸은 지난해 "평생을 열심히 살았는데 졸업장 없이 돌아가시면 한이 된다"면서 앞장서서 복학을 추진했다. 사연을 전해들은 학교 측도 흔쾌히 복학을 허락했다.

다시 학교에 돌아와 보낸 2009년도 1학기. 남 씨는 '실천신학'이란 과목을 수강하며 '할머니 대학생'의 열정을 불태웠다. 봉사단체에서 홀몸노인을 도운 활동을 리포트로 제출해 결국 마지막 1학점을 채웠다.

후기 학위수여식에 가족들과 함께 참석해 사진도 찍고 졸업식의 기쁨을 누린 남 씨는 "50년 만에 졸업장을 받아 감개무량하다. 옛 시절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앞으로 봉사와 선교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이웃에 따뜻함을 나눠 주겠다"는 당찬 졸업생의 포부도 잊지 않았다.

장윤정기자 yunj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