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9년 2월 12일 02시 55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참회록 통해 ‘세계관 전향’ 선언
일본에서 구조개혁의 전도사를 자임했던 인물이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쏟아내는 등 ‘세계관 전향’을 선언했다.
하버드대 경제학박사 출신으로 일본 사회에 미국식 자본주의의 도입과 확산을 주창해 왔던 나카타니 이와오(中谷巖·사진) 미쓰비시UFJ서치앤드컨설팅 이사장. 그는 11일 요미우리신문 기고를 통해 “미증유의 세계 금융위기는 글로벌 자본주의가 품고 있던 보복의 맹아가 현실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글로벌 자본주의는 최근 20여 년간 중국과 일부 아프리카 국가의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등 세계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했지만 이 와중에 글로벌 자본주의가 거대한 보복의 싹을 키웠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내각에서 총리 자문기구였던 ‘경제전략회의’ 의장 대리를 지낸 그는 자신의 제안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구조개혁에 상당 부분 반영됐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당시에는 글로벌 자본주의만이 일본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고 믿었다고 고백했다. 이것이 부메랑이 될지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
그는 글로벌 자본주의가 남긴 상처로 △거품 붕괴와 대규모 불황 △빈곤층 확대와 사회 붕괴 △환경파괴 가속화를 지적했다. 무모한 투기에 눈이 멀어 ‘거품의 생성과 붕괴’라는 자본의 자기증식 과정을 알아채지 못했다고도 했다.
그 결과 일본은 정부의 소득재분배 정책에도 불구하고 빈곤율(중간대 소득의 50% 미만 소득에 그친 빈곤층이 차지하는 비율)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에 오르는 등 어느새 ‘빈곤대국’이 돼버렸다는 게 나카타니 이사장의 자탄이다.
미국과 일본의 빈곤율은 각각 17.1%와 14.9%로 유럽 각국의 5∼6%보다 훨씬 높다는 것. 또 최첨단 의료기술을 자랑하는 미국의 빈곤층이 실제로 제공받는 의료수준은 쿠바보다 못하다는 지적도 곁들였다.
그는 “비교적 평등사회였던 일본이 따뜻함과 일체감, 안전, 신뢰관계의 미덕을 잃어가는 대신 계층 간 격차와 분열은 깊어졌다”며 “어떻게 하면 일본사회를 다시 일체감 있는 따뜻한 사회로 되돌릴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과제”라고 밝혔다.
나카타니 이사장은 지난해 12월 ‘자본주의는 왜 자멸했는가’라는 책을 내고 “구조개혁만으로 행복해지는 건 아니다. 공보다 죄가 더 많다”고 고백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궤도 수정한 바 있다.
규제완화, 무한경쟁, 글로벌 스탠더드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만으로는 금융위기나 빈부격차 확대, 환경파괴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새로운 신념’이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