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병 치료 헌신 차윤근 前국립의료원장 별세

  • 입력 2008년 3월 24일 03시 00분


그가 병원 문을 나서던 날, 환자 6000여 명은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원장 절대로 못 보낸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년여의 임기를 마치고 가려는 원장을 유임시켜 달라고 환자들은 장관에게 편지를 보내 호소했다.

평생을 한센병 치료에 헌신했던, 그래서 한센병 환자들의 아버지로 불렸던 차윤근(사진) 박사가 21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0세.

차 박사는 1958년 한센병 환자들과 첫 인연을 맺었다. 국립소록도병원장으로 부임하면서였다.

사회와 철저히 격리되고 소외된 환자들이 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센병 환자를 벌레 보듯 하던 시대였다.

차 박사는 환자들의 손을 잡고 용기를 주기 시작했다. 세상의 눈을 피해 산간벽지로 숨어들어간 환자를 찾아 전국 곳곳을 헤매고 다니기도 했다.

차 박사를 20년간 보필했던 어린이재단 김석현 회장은 “한센병 환자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털어내기 위해 한센병 어린이를 집에 데려다 직접 키우기도 했다”고 말했다.

소외된 이웃을 향한 그의 사랑은 장애인과 노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1975년부터 20년간 어린이재단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중증장애 아동을 위한 ‘한사랑 마을’을 설립했다.

노환으로 자리에 눕기 직전인 지난달까지 직접 의료봉사를 다녔다. 매일 노구를 이끌고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 서울 구로구의 노인종합복지관을 찾았다.

경기 광주시에 있는 한사랑 마을의 어린이들은 차 박사가 오면 전동 휠체어를 끌고 ‘할아버지 할아버지’ 하며 따라다녔다.

차 박사는 장애 어린이를 꼭 안은 채 “(한사랑) 마을에만 오면 마음의 고향처럼 육체와 영혼이 모두 편안해진다”고 말하곤 했다.

그는 연세대 의대와 미국 존스홉킨스대 공중보건대학원을 거쳐 보건복지부 보건·의정국장, 소록도병원장, 국립의료원장을 지냈다. 국민훈장모란장과 복십자대상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위선주 여사와 7남매가 있다. 빈소는 국립의료원 영안실 302호. 발인은 25일 오전 8시.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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