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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9월 21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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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그는 TV 프로농구 해설가였다. 1년 가까이 실업자였던 그는 생계를 위해 농구공 대신 마이크를 잡았다. 답답한 처지를 안타까워하면서 “언젠가 코트에 멋지게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길고 험했던 7년 세월이 흘러 그는 비로소 꿈을 이뤘다.
19일 끝난 2005 여자프로농구 여름리그에서 신한은행을 우승으로 이끈 이영주(39) 감독.
감격스러운 우승 헹가래를 받을 때까지 그의 농구 인생은 좌절의 연속이었다. 실업 현대에서 뛰던 그는 프로농구 출범을 앞두고 1996년 말 구단으로부터 “4개월만 계약하자”는 사실상의 방출 통보를 듣고 은퇴했다. 1998년 용인대 감독을 맡았지만 부임 후 한 달 만에 팀이 해체되는 아픔을 겪었다. 실직 상태가 길어지면서 서울 강동구 고덕동 아파트를 팔아 경기도로 이사를 가야 했다.
방송해설가를 전전하던 그는 현대 시절 은사였던 박수교 당시 기아 감독의 제의로 뒤늦게 프로 선수로 코트에 복귀했지만 2시즌 동안 경기당 평균 6분을 뛰는 후보 신세. 후배들에게 짐이 되는 것 같아 유니폼을 벗은 뒤 2001년 여자프로 현대 코치로 들어갔다.
하지만 모기업 현대가 경영난에 시달리며 농구단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고 정덕화, 박종천 감독이 잇달아 팀을 떠나면서 감독대행으로 홀로 선수들을 이끌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농구단을 지원하던 KCC가 현대와의 경영권 분쟁에 휘말려 2003년 말까지 선수단 숙소를 비워 달라는 통보를 해 왔다.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 이 감독은 남자 프로팀의 코치 제의도 의리 때문에 마다한 채 지난해 초 한 택배회사 컨테이너에 농구단 짐을 보관하고 경기 안산시의 한 모텔에 둥지를 마련했다. “작은 방에 선수 서너 명씩 새우잠을 자야 했어요. 승합차를 타고 다니며 체육관 이곳저곳을 다니며 동냥하듯 훈련했습니다.”
다행히 지난해 9월 신한은행이 팀을 인수해 발 뻗고 잘 수 있게 됐지만 올해 초 겨울리그에서 꼴찌의 수모를 안았다. 간판스타 전주원이 출산으로 빠진 데다 경험이 부족했던 탓.
그러나 이번 시즌 신한은행은 완전히 달라졌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똘똘 뭉쳤기에 팀워크는 단단하기만 했고 비시즌 동안 이 감독이 강력한 체력훈련을 시킨 덕분에 좀처럼 지칠 줄 몰랐다. 스타 1명에 의존하기보다는 많은 선수에게 기회를 주는 용병술도 빛을 봤다. 올 시즌 지도자상까지 받은 이 감독은 “고달픈 기억은 이제 가슴속에 묻어두고 싶다”며 “이제부터 선수들과 다시 하나가 돼 새 출발하겠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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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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