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킥복싱… 짜릿해요” 디자이너 전규정씨

  • 입력 2002년 12월 1일 17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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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능 스포츠우먼 전규정씨. - 박영대기자
만능 스포츠우먼 전규정씨. - 박영대기자
밀리터리 룩(military look)의 두툼한 잠바에 검은 장갑. 굉음을 내며 질주하던 오토바이가 멈추고 운전자가 헬멧을 벗는 순간 긴 머리가 치렁치렁 늘어뜨려진다. 비로소 오토바이의 주인이 여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디자인회사 ‘베스트 퍼체이스’에서 근무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전규정씨(32)의 출근길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시작된다. 그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 집에서 송파구 문정동 직장까지 오토바이로 출퇴근한다. “교통체증은 남의 얘기죠. 차 사이를 빠져나가면서 운전하면 출근길은 40분이면 충분해요.”

금녀의 벽이 무너진 세상이니 여자가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하지만 오토바이를 다루는 품이 만만치 않다. 올 4월 강습을 통해 처음 오토바이 핸들을 잡은 그는 실력이 급성장해 10월 모터사이클연맹의 라이선스 테스트를 통과할 정도가 됐다.

서른 즈음의 변신. 그는 특별할 것 없이 20대를 보냈다. 대학(서울여대 서양화과) 4년간 장학금을 받으며 성실하게 공부했고, 차석으로 졸업했다. 졸업 뒤에는 미술학원과 유치원에서 미술강사를 했고, 그 뒤 디자인을 공부해 디자인회사에 취직했다.

“3년 전쯤 갑자기 우울증이 찾아왔어요. 집과 회사를 왕복하는 쳇바퀴 생활에 지쳤었나봐요.”

이 무렵 그는 무기력증에서 헤어나지 못했고 결국 상담을 위해 정신과 병원의 문을 두드렸다. 의사는 “가장 해보고 싶은 것이 뭐냐”고 물었다. 그는 문득 아무 취미도 없는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막연히 뭔가 시작해보자는 생각에 인라인스케이트 동호회에 가입했다. 운동에는 소질이 있어 금세 인라인스케이트에 익숙해졌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점차 스킨스쿠버, 스키, 승마, 심지어 킥복싱까지 운동의 ‘영역’을 넓혀갔다. 오토바이도 이렇게 해서 시작했다.

킥복싱과 오토바이 실력이 소문나면서 곧 ‘스턴트우먼’으로 데뷔했다. 올 6월엔 스턴트 교육기관인 ‘액션 스쿨’에서 연기수업을 받았다. 3층 창문에서 뛰어내리고, 오토바이를 타다 넘어지기도 했다. 잠시 프리랜서로 일할 때여서 연기할 시간이 있었다.

그는 얼마 전 다시 선배가 운영하는 현재의 회사에 취직했다. 스턴트 일을 잠시 접었지만, 요즘도 킥복싱 도장에서 훈련하며 ‘몸’을 만들고 있다. 하시라도 출연할 준비가 돼 있는 셈. 그는 이젠 액션배우를 해보고 싶다. 아직 미혼인 그는 “결혼 때문에 지금의 생활을 포기하고픈 마음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언제 우울증을 앓았느냐는 듯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고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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