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학원 할머니 314명 「문맹탈출」 뜻깊은 한글날

  • 입력 1999년 10월 8일 18시 28분


“팔십년 넘게 살아 온/ 캄캄했던 세상/ 많은 날을 눈물로 보냈어요/ …(중략)…이제/ 까막눈이 아니에요/ 우리 모두/ 높이높이 날갯짓하며/ 마음껏 소리높여 웃읍시다.”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숭인동 수도학원에선 뜻깊은 한글날행사가 열렸다. 지독한 가난과 여자라는 이유로, 또는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 글자를 익힐 새도 없이 살아온 할머니들의 뒤늦은 ‘문맹탈출’을 축하하는 ‘축시’가 울려 퍼졌다. 행사에 참석한 314명의 ‘재학생’할머니들은 ‘다시 찾은 인생’을 자축하며 마냥 들떠 있었다.

정춘홍(鄭春洪·81·서울 중랑구 면목4동)할머니는 은행에도 가지 못하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감회에 젖었다. “이름도 못썼는데 어떻게 예금청구서를 작성해. 이젠 마을금고에서 경로기금을 타면서 자신있게 사인도 할 수 있어.”

김모할머니(62)는 “그동안 남편에게 못다한 이야기를 장문의 편지에 담고 싶어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젊었을 때 만삭의 몸이던 그는 “글을 모르는데 앞으로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거냐”며 남편이 휘두른 주먹을 감내해야 했다. 남편의 가출 후 가족은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할머니는 이 사연을 글로 ‘토해내고’ 싶다고.

〈김상훈기자〉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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