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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1월 15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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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주재자인 앨 고어 미 부통령은 모임이 시작되자 다짜고짜 탁자 위에 무거운 전화기 한 대를 올려 놓았다. “이 전화기는 배가 물속에 가라앉아도 사용할 수 있게 설계됐습니다. 대당 가격은 4백50달러입니다.”
그는 세일즈맨이라도 된 것처럼 다른 전화기를 또 올려놓았다. “미 공군에서 사용하는 이 전화기는 배가 가라앉으면 사용할 수 없지만 가격은 30달러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것을 구매하겠습니까.”
답은 당연히 30달러짜리 전화기. 배가 가라앉으면 전화기를 사용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참석자들이 폭소를 터뜨리는 가운데 고어는 15배나 비싼 전화기에 국민의 세금이 낭비된 사례를 들며 정부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날 회의는 다음달 역시 워싱턴에서 60여개국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는 ‘부패 사법공무원과의 전쟁’이라는 주제의 국제포럼과 함께 고어가 2000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부개혁의 기수’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마련한 야심적 무대.
고어는 이날 미국과 세계 각국의 사례를 섞어가며 21세기 정부조직개혁의 4가지 기본 방향을 제시했다.
첫째는 경쟁력. 그는 정부가 경제적 번영의 기초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의 경쟁력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불필요한 규제를 철폐하고 투명한 정부운영을 통해 외국투자자들의 신뢰를 획득하는 것이 지난 1년6개월동안 아시아에서 일어났던 외국자본의 유출을 예방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
미국은 지난 5년동안 2백50여개의 정부사업을 폐지했으며 1만6천쪽의 규정을 없앴다. 고어 부통령은 “한국도 거의 절반에 가까운 규제를 폐지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둘째는 보다 적은 비용으로 보다 많은 업무 수행. 올해 7백60억달러의재정수지흑자를예상하고 있는 미국은 5년간의 정부개혁으로 1천3백70억달러를 절약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미국은 이 기간 전체 공무원의 15%인 35만1천명을 감축했다. 캐나다는 연방정부 공무원의 25%를 삭감함으로써 만성적인 예산적자를 균형예산으로 반전시켰다.
셋째는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 증진. 고어는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정부가 자본 및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이동하는 지구촌에서 신뢰를 쌓기는 더욱 힘든 일”이라고 강조했다. 미 정부가 민간기업이 소비자를 대하듯 국민을 ‘고객’으로 대우하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것도 이 때문.
넷째는 시민 사회의 강화. 그는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간섭없이 주민들이 각 마을이나 공동체를 자율적으로 다스리는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미국은 구호대상인 영세민이 직업을 갖고 자립할 수 있도록 사회복지 제도를 개혁하고 있다.
고어 부통령은 끝으로 정부가 이 4가지 방향으로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점검하기 위해 올해 범정부 차원의 ‘고객만족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라면서 정부개혁을 위해 국제적 연대를 형성하자고 제안했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eunt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