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기업 부도는 물론 일반 가계의 파산도 잦아 유난히 힘든 한해였습니다. 새해에는 아무쪼록 나라 경제가 빨리 회복돼 제가 할 일이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지방법원 집행사무원 유재용(柳在龍·37)씨.
8년째 개인 및 기업체의 채권 채무관계를 대리해 압류 집행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그는 올해 유난히 바빴던 사람 중 한 명이다.
30일 낮에도 가압류 조치가 진행되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중소기업체 사무실에서 압류물품을 파악, 「딱지」를 붙이고 있었다.
『경기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중소기업체가 여기저기에서 비명을 지르며 도산하고 있습니다. 제법 견실하다고 평가받다 「돈줄」이 막혀 파산한 중소기업체를 찾아가 압류를 집행할 때는 정말 마음이 아프고 괴로운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서울지방법원의 올해 압류집행 건수는 총 1만3천87건.
경기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지난해보다 집행건수 자체는 오히려 3백여건이 감소했다. 불경기가 심하다보니 새로 생겨나는 업체가 줄어든데다 집행을 해봤자 빚을 갚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생겨난 기현상.
『돈을 받아야 할 사람이 상대방의 부동산 현황조사를 의뢰한 건수는 지난해보다 2백60여건 늘었지만 실제 입찰진행과 낙찰건수는 각각 8백건과 3백80건이 줄었습니다』
자연히 올해 초에 중요한 재테크 방법으로 인식돼 연일 붐비던 경매법정도 4월경부터 「썰렁」하기 그지없었다는게 그의 설명.
유씨는 일반가정에 대해 압류를 집행하면서 사회 곳곳에 분수에 넘치는 「거품 생활」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가을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를 찾았을 때 1천만원이 넘는 모피코트를 구입하는 등 낭비벽을 주체하지 못했던 중년여성을 만났고 올봄에는 가전제품을 마구 사들였다가 카드사로부터 「봉변」을 당하고 뒤늦게 눈물을 떨구는 30대 주부도 보았다는 것.
유씨는 개인간의 빚문제가 많지만 신용카드를 남용하다 압류조치까지 당하는 가정주부도 종종 있다면서 자신의 새해 소망을 이렇게 전했다.
『압류를 집행하면서 TV와 냉장고 세탁기가 온통 외제 일색인 가정을 많이 보았습니다. 새해에는 모두가 거품을 빼고 다시 일어선다는 각오로 법원의 압류집행관이 「저승사자」가 아닌 「평화의 사도」로 대접받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김경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