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報선정 올해의 인물]월드컵진출사령탑 차범근감독

  • 입력 1997년 12월 29일 20시 20분


그것은 한편의 드라마였다. 9월28일 도쿄국립경기장. 더이상 승부를 반전시키기 어렵다고 여겼던 경기종료 수분전. 그러나 한국 월드컵전사들은 포기하지 않고 선제골에 도취해 있던 일본팀을 밀어붙였다. 서정원(徐正源)의 동점골에 이어 이민성(李敏成)의 역전결승골이 터졌다.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 TV로 중계된 현장의 감동을 생생히 지켜본 국민은 너나 할것없이 기쁨에 겨워 환호했다. 승부를 뒤집는 것보다 더 통쾌한 승리의 기쁨이 또 있으랴. 이 순간 벤치에서 조용히 고개숙여 기도하는 이가 있었다. 한국축구대표팀 사령탑 차범근(車範根·44)감독. 그는자신의노력에정직하게 보답해준 선수들과 그가 믿는 신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올 한해 지구촌을 몰아친 「월드컵 열풍」. 아시아는 물론 한반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온 국민의 성원이 이처럼 한데 모아진 적도 일찍이 없었다.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4회연속 월드컵본선진출을 달성한 한국축구. 모든 국민에게 뿌듯한 자긍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감독과 선수들에게 주어진 찬사는 단순히 승리의 감동을 전해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잇단 국가적 비리, 대선 난기류, 경제 한파 등 번잡하기만한 세상사에서 거의 유일한 청량제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거창한 공약이나 공허한 애국심이 아닌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처절한 그라운드의 사투끝에 얻어낸 값진 선물에 국민은 더 감격했다. 동아일보사가 올 한해를 장식한 무수한 사람들 중에서 차범근감독을 97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것은 바로 이같은 이유에서였다. 「축구 대통령」 「한국의 베켄바워」 「컴퓨터 지도자」. 그에게 주어지는 찬사는 끝이 없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결코 행운이 아닌 최선을 다한 노력의 결실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선수시절 금욕과 성실로 최정상에 올랐던 그는 지도자의 길로 들어서서는 철저한 프로정신을 바탕으로 한 선수관리와 함께 치밀한 분석력을 앞세운 「정보전쟁」에서의 우위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리를 확보한 것. 그는 「X파일」이라 불리는 대표팀 관리 자료를 최신형 노트북에 빽빽히 담아 분신처럼 지니고 다니며 선수관리를 하고 전략을 짜는 등 한발 앞선 선진 지도법으로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데 대해 그는 『많은 어려움속에서 믿고 따라준 선수들의 영광을 대신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며 『더 진실되고 더 정직하며 더 성실한 지도자가 될 것을 바라는 국민의 목소리로 알고 더욱 정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재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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