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사람의 성격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오만하다”, “고집이 세다”, “자기밖에 모른다”라는 평가를 서로 주고받습니다. 각각의 성격 특성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정신분석에서는 이 세 가지가 하나의 마음 구조 안에서 서로를 강화하며 작동하는 경우를 자주 만납니다. 따로 존재할 때보다 함께 결합할 때 훨씬 더 견고해지고, 치료적 변화도 어려워집니다.
오만한 사람의 겉모습은 남을 무시하고, 배우려 하지 않으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 나타납니다. 그 이면에는 흔히 취약한 자아가 자리합니다. 자신이 충분하지 않다는 불안을 견디기 어려워서 타인을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유지하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자신감이 넘쳐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처 입기 쉬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갑옷을 두른 모습에 가깝습니다.
고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지가 강해서가 아니라, 생각을 바꾸면 정체성이 흔들릴 것 같은 두려움이 숨어 있습니다.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기존의 믿음을 붙드는 편이 훨씬 안전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변화보다 익숙함을 선택합니다.
자기애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건강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자기애가 지나치면 현실보다 자신의 믿음을 더 신뢰하게 됩니다. 결함을 인정하는 일이 단순한 실수의 시인이 아니라 존재 전체가 무너지는 경험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작은 비판에도 과도하게 상처받고, 충고를 적대감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기보다 상대를 비난하는 쪽을 선택하게 됩니다.
오만, 고집, 그리고 지나친 자기애가 서로 손을 잡는 순간 심리적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자기애는 자신이 항상 옳다고 확신하게 만들고, 오만은 타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하며, 고집은 어떤 변화도 거부하게 만듭니다. 현실은 왜곡되고, 대화는 단절되며, 관계는 막혀 버립니다. 새로운 경험이 마음속으로 들어올 통로 자체가 닫힙니다.
영국 정신분석가 윌프레드 비온은 인간이 성장하려면 자신의 무지와 불완전함을 견디면서 경험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오만을, 배우는 능력을 파괴하는 마음의 상태로 보았습니다. 오만은 “나는 이미 알고 있다”는 확신 속에서 경험 자체를 거부합니다. 배우면 해결되는 무지보다 오만이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
자기애가 강할수록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는 일은 단순한 실수의 인정이 아니라 전능감의 붕괴처럼 경험됩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은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완전함을 위협하는 공격으로 느껴집니다. 깊은 두려움과 수치심을 피하기 위해 더욱 완강하게 버티게 되고, 고집은 점점 강해집니다. 겉으로는 강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자신을 지키고 있는 셈입니다.
프로이트는 항문기 경험에서 통제와 자율성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보았습니다. 배변 훈련 과정에서 부모의 통제가 지나치면 아이는 배설을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통제력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똥고집’이라고 부르는 표현은 이러한 심리적 의미를 떠올리게 합니다. 물론 모든 고집을 항문기 경험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통제력을 잃는 것에 대한 불안이 성인이 되어서도 성격의 일부로 남을 수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병적인 자기애에서는 자신의 결함을 인정하는 일이 너무나 큰 굴욕으로 느껴져 오히려 자기 파괴적인 선택을 반복할 수도 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만큼 과도한 자기애는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기보다 취약한 자기를 보호하려는 절박한 방어의 몸부림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오만과 고집을 단순히 성격의 결함으로만 비난하기보다, 그 뒤에 숨어 있는 두려움과 수치심을 함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 구조는 충고나 설득만으로는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정신분석은 오래된 방어를 억지로 무너뜨리기보다, 그것이 무엇을 지키고 있는지를 함께 탐색하는 작업입니다. 피분석자는 익숙한 방식을 내려놓는 과정에서 침묵하거나 합리화하고, 때로는 분석가를 공격하기도 합니다. 그 저항 역시 자신을 보호하려는 안간힘입니다.
분석가에게 필요한 것은 피분석자가 견디기 어려워 밖으로 내보낸 불안과 무력감을 함께 견디고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그 감정이 충분히 담기고 소화될 때, 오만은 겸손으로, 고집은 유연함으로, 과도한 자기애는 보다 안정된 자기 존중으로 조금씩 변화할 가능성이 열립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논쟁을 통한 승리가 아니라 자신의 취약성을 안전하게 마주할 수 있는 관계의 경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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