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마리의 말이 결승선을 향해 전력 질주하고 있다. 땅을 박차고 날아오를 듯 앞으로 치닫는 말들 위로 기수들은 몸을 낮춘 채 고삐를 바짝 움켜쥐고 있다. 누가 승리할지는 예견하기 어렵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고, 관중은 과감히 생략됐다.
프랑스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가 1821년에 그린 ‘엡섬의 더비’(사진)는 같은 해 영국에서 열린 ‘더비’ 경마대회를 소재로 삼았다. 더비는 영국 최고 권위의 경마대회로, 오늘날 ‘경마계의 블루리본’이라 불린다. 제리코는 누구보다 말을 사랑한 화가였다. 젊은 시절 베르사유의 황실 마구간에서 말의 근육과 움직임을 수없이 스케치했던 그는 이 그림에서 우승의 순간이 아닌, 승리를 향해 질주하는 격정적인 과정 자체를 포착했다. 실제 1821년 우승마는 ‘구스타부스’였지만, 그림에서 주인공은 특정되지 않는다. 제리코는 승자를 기념하기보다 경주의 역동성과 긴장감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기 때문이다.
이 그림의 백미는 말들의 비현실적인 포즈다. 말들은 앞다리와 뒷다리를 앞뒤로 길게 뻗은 채 공중에 붕 떠 있다. 당시 사람들은 말이 가장 빠르게 달릴 때 이런 자세를 취한다고 믿었지만, 훗날 고속카메라가 밝혀낸 진실은 달랐다. 실제로 말의 네 다리가 모두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은 다리를 몸 안쪽으로 한껏 모았을 때뿐이다. 제리코의 묘사는 과학적으로는 명백한 시각적 오류지만, 그 어떤 사진보다도 강렬하게 속도감을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200년이 지난 지금, 우승마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다만 캔버스를 뚫고 나올 듯 대지를 가르는 질주의 에너지는 여전히 생생하다. 제리코의 그림에 승자는 없다. 오직 달리는 존재들만 있을 뿐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오래 기억해야 할 것도 단 한 명의 승자보다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내달렸던 그 뜨거운 과정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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