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이야기로 배우는 쉬운 경제]설날 세뱃돈도 계좌이체… 현금이 점점 사라진다

  • 동아일보

중국, 모바일 결제 비중 90% 넘어
일본은 현금 사용 비중 여전히 높아
현금 안 쓰면 돈 느끼는 감각 떨어져
계좌 속 돈 쪼개고 소비 습관 길러야

설날이 지나면 아이들 사이에서 세뱃돈 이야기가 빠지지 않습니다. 봉투에 담긴 현금을 받았다는 친구도 있고 휴대전화 알림으로 세뱃돈이 들어왔다는 친구도 있습니다.

요즘은 마음을 전하기 위한 돈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봉투에 담아 건네던 세뱃돈이 이제는 입금으로 전해지기도 합니다. 축의금이나 조의금도 현금을 뽑아 봉투에 넣기보다 바로 계좌로 보내는 일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마음은 그대로인데 돈을 전하는 방식은 왜 달라졌을까요. 이런 모습은 우리가 ‘현금 없는 사회’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 ‘현금 없는 사회’ 먼저 경험한 중국

현금 없는 사회의 변화를 가장 빠르게 경험한 나라로 중국이 자주 언급됩니다. 중국에서는 대형마트뿐 아니라 작은 가게, 길거리 노점상, 택시에서도 QR코드 결제가 일상적으로 사용됩니다. 지갑을 꺼내지 않고 휴대전화 하나로 결제하는 모습이 특별하지 않은 풍경이 됐습니다.

중국 유니온페이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중국 대도시 거주민의 월평균 소비금액 가운데 모바일 결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도시별로 최대 90%를 넘었습니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빠르게 높아진 이후 중국인의 일상 소비에서 모바일 결제가 중심 수단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 주는 수치입니다.

이처럼 빠른 변화가 가능했던 데에는 정부의 정책 방향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중국 정부는 초기부터 모바일 결제를 적극 장려해 왔는데 이는 거래 기록이 모두 남아 세금 탈루와 불법 거래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카드 단말기를 설치하지 않아도 QR코드 하나만 있으면 결제가 가능해 소규모 상점과 노점상까지 모바일 결제가 빠르게 확산됐습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새로운 불편함도 함께 만들었습니다.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은 결제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모바일 결제가 중심이 되더라도 현금 결제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지침을 내놓았습니다. 현금을 완전히 없애기보다 선택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조정된 것입니다.

● 현금 사용을 유지하는 나라 일본

중국과는 다른 길을 걷는 나라가 있습니다. 일본입니다. 일본은 기술력이 높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현금 사용 비중이 여전히 높은 사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편의점과 식당, 소규모 상점에서도 현금 결제가 낯설지 않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은행이 발표한 지급결제 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개인 소비 가운데 현금 결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수준입니다. 카드와 모바일 결제가 늘고 있음에도 현금은 여전히 중요한 결제 수단으로 남아 있습니다.

일본에서 현금이 유지되는 이유는 생활 환경과 인식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일본은 지진과 태풍 같은 자연재해가 잦은 나라입니다. 전기가 끊기거나 통신이 불안정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현금은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결제 수단으로 여겨집니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현금은 위험이 적은 돈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습니다.

일본 사회에서는 신용카드를 쓰면 소비가 늘어난다는 생각도 강합니다. 현금을 쓰면 지출이 눈에 보이기 때문에 돈을 아끼는 데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금리 환경에서 은행에 맡기기보다 현금을 직접 보유하며 사용하는 문화도 현금 선호를 뒷받침해 왔습니다.

일본 정부는 내수를 살리기 위해 ‘캐시리스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변화 속도는 빠르지 않습니다. 고령 인구 비율이 높은 사회에서 결제 방식의 변화는 생활 방식의 변화와도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현금을 줄이는 대신 현금과 비현금을 함께 사용하는 방식을 선택하며 천천히 이동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사례는 현금 없는 사회가 하나의 모습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어떤 사회는 편리함을 빠르게 선택했고 어떤 사회는 익숙함과 안정감을 지키는 길을 택했습니다.

● 세뱃돈 입금이 알려주는 변화와 경제 습관

현금 없는 사회에서 가장 크게 달라지는 것은 돈을 쓰는 속도보다 돈을 느끼는 감각입니다. 봉투에 담긴 현금은 손에 쥐고 세어 보며 금액을 실감할 수 있지만 계좌에 찍힌 숫자는 화면 속 정보로 지나가기 쉽습니다. 그래서 같은 금액이라도 더 가볍게 느껴지고 소비 결정도 빨라질 수 있습니다.

이럴수록 중요한 것은 돈을 아끼는 방법보다 돈을 구분하는 기준입니다. 세뱃돈이 들어왔을 때 전부를 바로 쓰거나 모아 두기보다는 바로 쓸 돈, 모아 둘 돈, 아직 정하지 않고 남겨 둘 돈 등으로 구분하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돈을 나누는 과정은 소비를 늦추고 선택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특히 아직 정하지 않고 남겨 두는 돈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지금 당장 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경험은 충동을 조절하는 연습이 되기 때문입니다. 결제가 쉬워질수록 생각하는 시간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현금 없는 사회에서 돈을 잘 쓴다는 것은 빠르게 결제하는 것이 아니라 왜 이 선택을 했는지 설명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세뱃돈이 봉투에 담겨 있든, 통장 속 숫자로 찍히든 그 안에 담긴 마음은 같습니다. 다만 돈의 모습이 달라질수록 그 마음을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느냐는 더 중요해집니다. 화면 속 숫자는 쉽게 스쳐 지나가지만 그 돈에는 누군가의 응원과 바람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현금 없는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돈을 얼마나 빨리 쓰느냐가 아니라, 이 돈이 어떤 마음에서 왔는지를 잠시 멈춰 생각해 보는 일입니다. 돈이 숫자로만 남지 않고 가슴에 남는 경험이 될 때 비로소 세뱃돈은 진짜 의미를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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