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AI정책 총괄하는 배경훈 부총리
박사 3, 4년차도 혜택 받을 수 있게… 가능성 있는 차세대 과학자 선정
과학연구에 AI 접목해 효율 높여야… 제조강국 韓, 피지컬 AI도 유망
국가대표 AI 모델은 신뢰성 중요… 美中에 준하는 AI 기술력 목표
배경훈 부총리는 14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10조 원 수준으로 불어난 AI 예산 투자가 내년으로 끝나면 안 된다”면서 “정부가 최소 5년간은 지속적인 투자로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국내에서도 AI나 과학기술 연구를 지속적으로 하고 성과를 냈을 때 충분히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에 정부는 미래에 가능성 있는 젊은 과학자들을 매년 200명 정도씩 선발해 국가적으로 지원할 계획입니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14일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정부가 차세대 과학기술인에게 ‘성장 로드맵’을 잘 제시해 줘야 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젊은 과학자’ 선발은 매년 20명씩 선정하는 석학급 ‘국가 과학자’와는 별개로 진행되며, 정부는 박사 3, 4년 차만 돼도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할 계획이다.
배 부총리는 “앞으로 AI를 활용해 연구개발(R&D) 효용성을 극대화하면 우리 과학기술계에도 상당한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제조업에 강점이 있는 한국은 향후 피지컬 AI 시대에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국가대표 AI’로 불리는 AI 파운데이션 모델 선정 기준에 대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모델을 지향하면서도 안전하고 신뢰성 있는 AI 모델을 공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우리나라 과학 인재 위기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과학자를 꿈꾸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워낙 의사 쏠림 현상이 심해졌고 젊은 사람들이 과학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또 과학기술을 전공하고 졸업했을 때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확신을 못 하는 것 같다. 과학기술인으로서 ‘성장 로드맵’을 잘 제시해 주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보상 측면에서도 부족함이 많지 않나.
“미국은 워낙 물가가 비싸다 보니 그만큼 연봉이 높다. 또 글로벌 기업들이 인재에 막대한 투자를 하다 보니 거기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미국이나 중국으로 나가는 이유가 연봉 때문만은 아니다. 안정적으로 예측 가능하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도 중요하다. AI를 연구하던 사람들은 기업으로 가면 딜레마에 빠진다. 대부분 기업에서 AI 연구를 심도 있게 하지 않는다. 이들은 AI를 활용한 애플리케이션이나 서비스 개발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본인의 AI 연구를 발전시켜 나갈 시간이 없다.
―이번에 발표한 인재 대책에 그런 고민이 많이 담겼나.
“이번에 국가 과학자 제도를 준비하면서 우리 젊은 인재들에게 과학에 대한 관심을 어떻게 불러일으키게 할 것인가를 고민 많이 했다. 그리고 왜 학생들이 과학자가 아닌 의사나 교수가 되고 싶어 하는지를 분석했다. 그게 다 이유가 있었다. 교수는 테뉴어(정년)가 보장돼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고, 의사들도 면허 취득하면 의사 활동을 계속 해 나갈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과학기술자에게도 일회성 연구비 지원이 아닌 제도적 환경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느꼈다. 예를 들어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연구 활동비 지원, 정부 행사나 정책에 참여할 기회, 공공시설을 이용할 때 특별한 대우 등을 통해 자긍심과 소명감을 갖고 연구할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매년 석학급 과학자를 20년 선발해 지원하기로 했다.” ―젊은 과학자들에 대한 지원책도 검토 중인가.
“젊은 과학자들에게도 “우리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국가 과학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어주고 자극도 주는 게 필요하다. 그래서 앞으로 석학급 20명과 별도로 ‘젊은 국가 과학자’도 매년 200명씩 선발해 지원할 계획을 갖고 있다. 박사 3, 4년 차만 돼도 선발될 수 있게 할 것이다. 국가과학자 선발은 공정하게 할 것이다. 정부가 추천을 받아 심사를 할 수도 있고, 민간 평가단을 운영할 수도 있다. 연구 성과뿐 아니라 사회적 평판도 종합적으로 보겠다. 젊은 과학자들의 선발 기준은 좀 다를 것이다. 이들은 연구 성과가 부족할 수 있으니 미래 가능성에 가점을 둬서 평가를 해야 할 것이다. 선정 기준은 정리되면 발표할 예정이다.”
―AI와 관련해 인재 다음으로 많은 걱정거리가 전력이다.
“GPU(그래픽처리장치)가 26만 장 들어온다고 했을 때 소요되는 전력량이 500∼800MW(메가와트) 수준이다. 우리 정부의 전력 공급 계획상 2030년 정도까지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나중에 AI 서비스가 더 늘어나고 외국 기업들이 한국에 투자하면서 더 많은 GPU가 가동된다면 여기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지금 SMR 같은 새 원전 가동 시기가 2035년 이후라서 2030∼2035년 사이 우리가 전력 확보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
―AI 학습에 따르는 저작권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대응할 계획인가.
“저작권자들의 저항이 좀 큰 편이다. 그래서 정부 차원에서 제도 개선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AI를 학습시키고자 하는 쪽과 저작권자 간에 공정한 거래 체계가 필요하다. 저작권자들은 AI 시대에는 양질의 데이터가 돈이 된다고 생각하고, AI 학습에는 어마어마한 저작권 데이터가 필요하다. 개선 방안을 문화체육관광부와 논의 중이다. 가령 샌드박스 규정을 통해 특정 영역의 데이터는 특수 목적에 한해서 오픈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국가대표 AI 파운데이션 모델 선정에 5개팀이 경합 중이다. 결국 어떤 팀이 선발될까.
“AI 파운데이션 모델의 전제 조건은 소스를 오픈하는 것이다. 오픈 소스가 되려면 학습하는 데이터에 신뢰성이 있어야 한다. 만약에 불법적인 데이터를 사용해서 학습했다면 그 오픈된 모델은 나중에 문제가 된다. 그래서 국가대표 AI는 최대한 안전하고 신뢰성 있는 데이터로 학습한 모델이어야 된다.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모델을 지향하면서도 안전하고 신뢰성 있는 AI 모델을 공급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 부분들을 기업들이 주의해서 개발했으면 좋겠다.”
―과학기술 발전에 AI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대부분의 과학 문제들은 가설에 기반해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그 가설을 세우기 위해 수많은 과학 이론에 대한 실험을 하고 그걸 하나하나 증명해 나가야 한다. 사람이 평생을 들여서 1만 개 정도 가설을 세워 실험할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AI를 활용하면 불과 하루 만에 10만, 100만 개의 실험을 할 수 있는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그게 가능한 나라와 아닌 나라의 격차는 엄청나게 벌어질 것이다. 과학기술뿐만이 아니라 바이오나 화장품 소재 물질 개발에도 AI가 쓰이면 효율성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날 수 있다. 이미 미국은 이런 분야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우리도 빨리 따라가야 한다. 정부에 와서 보니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과학자가 많이 있고, 우리도 다양한 과학기술에 대한 연구를 체계적으로 잘 준비해 왔다. 과학기술에 AI를 잘 적용한다면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다고 본다.” ―AI 예산이 3배가 늘어서 10조 원이 됐는데 충분하다고 느끼나.
“우리 재정 지출 규모를 감안했을 때 적지는 않은 숫자다. 정부 예산만 갖고 모든 걸 해결하겠다고 생각하면 안 되지만 어느 정도의 AI 인프라는 정부가 준비해야 한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이런 수준의 예산 투자가 내년으로 끝나면 안 된다는 것이다. AI의 성과가 나오려면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AI로 실제 현장에서 성과가 나는 데 최소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최소 5년간은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면 기업이 바뀔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AI 경쟁력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확실히 우리가 싱가포르 영국 프랑스 등과 함께 3위권 그룹에 있는 건 맞다. 그런데 AI 시장에서 90%를 1, 2위인 미국과 중국이 장악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3위권이라는 의미는 크지 않다. 우리가 ‘AI 3대 강국’을 얘기할 때는 1, 2위에 준하는 수준의 AI 기술력과 서비스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언제쯤 우리나라가 과학 분야 노벨상을 탈 수 있을까.
“일본은 그동안 물리학과 화학에 투자를 많이 했다. 반면 한국은 그보다는 ICT(정보통신기술) 강국을 위한 인터넷망 투자, 그리고 지금의 AI 같은 응용 연구에 더 투자해 왔다. (기초 과학보다는) 경제 성장을 위한 기술에 더 방점을 찍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굳이 노벨상에 대한 자격지심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피지컬 AI 시대에 한국은 앞서 나갈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거대언어모델(LLM)은 AI의 기본적인 언어 이해 모델이다. AI는 여태껏 인류가 쌓아왔던 지식들을 죄다 모아서 학습했는데 이제 2027, 2028년쯤 되면 학습할 수 있는 데이터가 고갈될 수 있다. 그다음 단계인 피지컬 AI로 넘어가 실제 환경에서 AI가 원하는 수준으로 작동하려면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될 요소가 몇십만 배 이상일 것이다. 단순히 움직이는 것을 넘어서 전략을 짜고 의사결정까지 AI가 하기 위해서는 시나리오별로 어마어마한 데이터를 모아줘야 한다. 우리나라는 제조업의 강점이 있고 공장 자동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기 때문에 이런 데이터 확보 체계를 잘 갖춰 나가면 피지컬 AI 시대에 우리의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임기 중에 꼭 이루고 싶은 것은?
“우리 공직사회가 좀 더 AI를 활용하고 AI에 더 친숙한 조직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 정부가 AI 비전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더 설득력 있는 얘기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지금 산업계에서 얘기하고 있는 AX만으로는 안 된다고 본다. 기본적인 과학기술이 기반이 돼야 한다. 우리가 엄청난 생산성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AI 모델, 그리고 기본이 되는 과학기술이 모두 필요하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49)
국내 대표적인 인공지능(AI) 전문가로 현재 정부부처의 과학기술 및 AI 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광운대에서 전자물리·전자공학을 전공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정보통신·제조기업에서 AI와 미래기술 전략을 담당했고, 2020년부터 LG AI연구원장으로 재직하며 한국형 거대언어모델(LLM) ‘엑사원’ 개발을 주도했다. 2023년 은탑산업훈장을 받았고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