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시대는 어느 나라에나 있었다. 독일 출신 화가 조지 그로스는 미술을 사회 변혁의 무기로 인식했다. 그는 양대 세계대전을 경험한 세대로 자신이 살던 독일 사회를 풍자한 그림으로 큰 명성을 얻었지만 곤욕도 치렀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그로스는 전쟁의 참상을 직접 목격한 후 정신쇠약에 걸려 의병 제대했다. 이후 반전(反戰)과 반군국주의뿐 아니라 부패한 당시 독일 사회를 고발하는 주제의 작품을 여럿 그렸다. 그중 대표작이 ‘사회의 기둥들’(1926년·사진)이다. 세로로 긴 그림의 맨 아래에는 군인이 등장한다. 한 손에는 맥주잔을, 다른 손에는 칼을 들었다. 머리로는 기마병이 싸우는 상상을 하고 있는 그는 나치 문양이 새겨진 넥타이를 맸다. 군국주의에 경도된 군부독재를 상징한다. 왼쪽에 양복 입은 남자는 머리에 커피잔을 뒤집어쓰고 신문들과 피 묻은 종려나무 가지를 안고 있다. 폭력의 현장을 발로 뛰며 취재하는 대신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가짜 기사를 쓰는 언론인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머리에 똥이 한가득 든 뚱뚱한 남자는 누굴까? 세상이 어찌 되든 돈만 벌면 된다는 자본가에 대한 풍자다. 그 위에 검은 옷을 입은 사제는 만취 상태로 축복을 내리고 있다. 세상이 암울할 때 성직자라도 옳은 길을 제시해 주면 좋겠지만 그는 이미 권력의 앞잡이가 됐다. 배경에는 민중에게 총칼을 휘두르는 군인들과 어둠 및 화마에 뒤덮인 도시가 보인다. 이렇게 화가는 정치군인, 언론인, 자본가, 성직자 등을 부패하고 무능한 사회 지배계급으로 풍자하고 있다.
나치 정권이 들어서자 그로스의 그림들은 ‘퇴폐 미술’로 낙인찍혀 모두 몰수되거나 파괴됐다. 다행히 화가는 히틀러 집권 바로 직전에 미국으로 탈출했다. 1938년에는 독일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그로스는 1946년 출간한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야만이 만연했고 시대는 미쳤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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