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처럼’ 아닌 ‘그것답게’… 100년 여관의 변신[김대균의 건축의 미래]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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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대흥사에 있는 유선여관
수선때 중시한건 ‘유선여관다움’
답은 기억-자연이 중심되는 공간
진정한 ‘우리다움’의 출발점은 자부심-부족함 모두 인정하는 것

섬과 육지가 교차하며 바다와 육지의 경계가 모호한 여수의 풍경은 그 자체로 특별하다. 외국 어디와도 비교할 수 없는 ‘여수다운’ 모습이다. 김대균 대표 제공
섬과 육지가 교차하며 바다와 육지의 경계가 모호한 여수의 풍경은 그 자체로 특별하다. 외국 어디와도 비교할 수 없는 ‘여수다운’ 모습이다. 김대균 대표 제공
김대균 건축가·착착스튜디오 대표
김대균 건축가·착착스튜디오 대표
‘외국처럼’ 넘어 ‘우리답게’로

‘관광’이라는 단어에서 ‘관(觀)’은 눈으로 보는 행위를 넘어 ‘넓게 보고 살피다’라는 뜻을 지닌다. 또한 관은 주역 괘 중 하나로 땅 위에 바람이 불고 있는 형상을 나타낸다. 땅에 바람이 불면 만물은 바람을 따라 움직이며 생명의 소리를 낸다. 관 괘는 섣부른 움직임보다는 바람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사유하는 유보의 미를 의미한다. 빛 ‘광(光)’은 사람이 빛나는 순간을 표현한 단어다. 사람이 빛나는 순간은 어떤 것을 각성하고 공감하는 순간이다. 두 한자를 통해 관광의 의미를 재구성하면 관광은 ‘세상을 공감각적으로 관찰하고 사유함으로써 나를 각성하는 행위’다.》





작년 현지인 안내로 출장을 겸해 전남 여수에 ‘관광’을 갔다. 해안선을 따라 섬과 육지가 교차하며 만드는 풍경은 바다와 육지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면서 무한한 풍경을 경험하게 했다. 하지만 가끔 풍경을 저해하는 전봇대와 건물들 때문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함께 갔던 분들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이탈리아 남부 해안의 아름다운 풍경과 건물과의 관계를 이야기하며 우리도 ‘외국처럼’ 풍경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외국처럼’ 대신 ‘여수답게’로 접근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지를 가면 ‘한국의 베니스’와 같이 ‘무엇처럼’이란 수식어를 흔히 들을 수 있다. 이런 수식어는 어떤 맥락도 없고 이해를 돕기는커녕 기대감을 저해한다. 이것은 관광지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의 실리콘밸리, 한국의 마돈나 등 한국의 산업, 행정, 예술 등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 유교 문화에서 뛰어난 것을 본받는 것은 당연하고 훌륭한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본받는다는 것은 나를 잊는 것이 아니라, 나와 너의 교차를 통해 나를 각성하고 우리를 만든다는 의미다. 다른 것을 통해 나를 성장하게 하는 ‘타산지석’도 각성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지, 내가 다른 어떤 것처럼 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이제 한국은 다양한 문화와 산업 분야에서 세계 선두에 있고, 한국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화 양상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것은 더 이상 선례가 없는 환경에서 무언가 만드는 입장이 된 것을 의미한다. 관련된 것들의 현재 동향을 조사 분석하는 것은 기획 단계의 핵심 중 하나지만, 사례가 단순히 결과로 이어져서 ‘무엇처럼’ 기획과 디자인이 되는 것은 더 이상 프로젝트의 성공도 안전도 도출하지 못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럼 ‘무엇처럼’이 아니라 ‘우리답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첫 번째로 나를 현실에서 자각하는 것이다. 나 아닌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은 뿌리가 없는 나무와 같아 생명력이 없다. 자부심과 노력, 부족함도 다 우리임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우리다움’의 출발점이다. 두 번째로 잠재된 본질과 가치를 일깨우는 것이다. 한 예로 수산시장의 본질과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바다 생태 환경에 있다고 생각한다. 바다 생태가 건강할 때 좋은 생선을 잡고, 먹을 수 있고, 또한 지속할 수 있다. 깨끗한 수산시장은 주변의 바다를 건강하게 만들고, 오는 사람에게 신뢰를 형성하는 바탕이 될 수 있다. 청소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배수로와 바닥의 재료와 구배, 물건과 동선의 질서, 바다 환경을 고려한 박스디자인 등은 실천이자 본질이고, 디자인의 출발점이자 결과가 돼야 한다. 지역의 문화와 본질에 대한 고민 없이 다른 시장처럼 만들어진 아케이드, 간판, 입구 상징물은 시장들의 풍경을 망치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새로움과 다양함을 포용하는 관용과 용기다. 나다움과 우리다움은 남을 인정하는 문화의 바탕 위에서 가능하다. 남들과 다른 것을 포용하지 못하는 경직된 사회는 미래로 향할 수 없고 새로움이 없이는 오래됨도 생명력도 없다.

지역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작업은 지금 우리에게 핵심적인 사안 중 하나다. 이것은 관광뿐만이 아니라 지역 인구 소멸, 지역 균형발전, 문화의 보존 등 많은 문제와 연관돼 있다. 문제 해결의 시작은 ‘무엇처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답게’ 만드는 것에 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전남 해남 대흥사에 있는 유선여관 실내. 지어진 지 100년 가까이 된 것으로 알려진 이곳은 수선을 거쳐 
2021년 다시 문을 열었다. 수선 과정에서 가장 크게 고려된 것은 ‘가장 유선여관다운 것이 무엇일까’ 하는 점이었다. 김동규 
사진작가 제공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전남 해남 대흥사에 있는 유선여관 실내. 지어진 지 100년 가까이 된 것으로 알려진 이곳은 수선을 거쳐 2021년 다시 문을 열었다. 수선 과정에서 가장 크게 고려된 것은 ‘가장 유선여관다운 것이 무엇일까’ 하는 점이었다. 김동규 사진작가 제공
몇 해 전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전남 해남군 대흥사에 있는 유선여관의 수선을 디자인했다. 이곳은 지어진 지 100년 가까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프로젝트를 할 때 가장 고민했던 것은 ‘요즘 한옥 스테이와 무엇을 함께하고 또 무엇이 다를 수 있을까’였지만 고민의 결과는 뜻밖에 ‘다를 것이 없다’였다. 전통은 지금과 함께 있는 것이지 단순한 과거의 복제나 흉내 내기면 그것은 생명력을 잃어버린 모형일 뿐이다. 그럼 이곳의 진정성은 무엇일까. 여기를 묵었던 수많은 사람의 기억이 우선 생각났다. 두 번째는 주변의 공기와 나무, 계곡, 밤하늘의 별이었다. 집은 배경이 되고 시간의 기억과 주변 자연이 중심이 되는 공간. 이것이 ‘유선여관다운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우리다움’은 단순히 남과 다른 것이 아니다. 지역의 풍토를 바탕으로 보편성과 특이성의 접점에서 우리를 탐색하는 과정이 ‘우리다움’이다. 이런 과정 안에서 정성과 자부심, 환대 등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우리다움’은 빛날 것이다.


김대균 건축가·착착스튜디오 대표


#유선여관#우리다움#100년 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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