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에 무대 만든 ‘재배의 집’… 농촌-도시문화를 함께 키우다[김대균의 건축의 미래]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1일 22시 07분


코멘트

佛 ‘15분 도시’ 日 ‘콤팩트시티’ 등 자연-문화 결합과 저탄소 방점
온실에 문화 재배하는 ‘재배의 집’
식물에 둘러싸인 공연-전시 가능
시골-도시 상호보완의 하우스

김대균 건축가·착착스튜디오 대표
김대균 건축가·착착스튜디오 대표
시골과 도시가 순환하는 공간


농업을 뜻하는 영어 ‘agriculture’에서 ‘agri’는 토지, 밭을 의미하고 ‘culture’는 문화라는 뜻 이외에 경작, 재배라는 뜻이 있다. 어원을 통해서 살펴본 ‘agriculture’는 ‘밭의 경작’이다. 하지만 단어의 의미를 다시 조합하면 ‘토지의 문화’이기도 하다. 도시를 대표하는 ‘문화’와 농촌을 대표하는 ‘경작’이 ‘culture’라는 한 단어 안에 있다는 것은 요즘 시골과 도시의 문제를 바라보는 데 의미하는 바가 크다.》



약 1만 년 전 신석기 시대 도구를 이용해 농사를 짓는 농업혁명이 일어났다. 농업은 인간을 정착하게 했고 촌락이 형성되면서 ‘인류 문명의 뿌리’가 되었다. 이후 곡물의 잉여생산으로 인해 교류와 권력이 더욱 활발하게 형성되면서 ‘인류 문명의 꽃’이라는 도시가 기원전 약 4000년 전에 만들어졌다. 농촌을 인류 ‘문명의 뿌리’라고 하고, 도시를 ‘문명의 꽃’이라고 하면 이것은 하나의 식물과 같다. 도시 문제와 농촌 문제를 각각 해결하려는 것에서 벗어나 하나의 생명 순환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새로운 모색이 가능하지 않을까.

도시나 시골을 나누는 주요 척도는 인구밀도다. 인구밀도는 기후위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2020년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온실가스 발생원인의 약 70%가 건물이고 약 18%가 수송이다. 기후위기는 심각함을 넘어 인류 존속을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기후위기는 인류 문명의 종말점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분산된 저층 건물들은 시골의 흔한 풍경이지만 놀랍게도 온실가스를 많이 소비하는 마을 형태이다. 인구 감소로 분산된 집들은 마을의 공동화를 가속하고 도로와 전기 등 도시기반시설의 관리와 지속을 어렵게 만든다. 이에 지역을 작고 단단하게 재구성하는 시도가 한국을 비롯해 네덜란드, 스페인, 프랑스, 일본 등 다양한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다. 프랑스 파리 근교 ‘15분 도시’는 지역민이 15분 이내에 의료, 교육, 복지, 문화, 여가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춘 작은 도시로 공동체 가치, 시민 연대와 평등, 친환경적 도로 정비와 조경 등을 중심으로 지역을 만들려는 것이다. 일본의 도야마와 같은 소도시들도 ‘콤팩트시티’를 통해 노화된 지역 인프라와 생활편의시설을 집적화해 효율적 예산 운영과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는 새로운 성장모델이 아니라 인구 감소를 받아들이고 지역의 가치와 지속에 방점을 둔 시도다.

소규모 지역집중계획은 단지 시골만이 아니라 암스테르담, 바르셀로나 등 여러 대도시에도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탄소 배출량이 적은 대도시의 특징은 기능 혼잡도가 낮으면서 중층 고밀도의 건물과 공원과 같은 자연경관이 결합돼 있다는 것이다. 도시와 시골의 상하관계가 아니라 소규모 중고밀도 지역이 서로 순환관계망으로 재조직된다면 도시와 시골의 인구밀도 경계는 옅어지고 새로운 관계가 설정될 수 있다.

‘하우스비전’은 다양한 산업 분야의 기업들과 건축가들이 만나서 가까운 미래의 집과 생활의 모습을 보여주는 국제적인 전시 행사다. 2022년엔 충북 진천에서 열렸다. 김동규 사진작가 제공
‘하우스비전’은 다양한 산업 분야의 기업들과 건축가들이 만나서 가까운 미래의 집과 생활의 모습을 보여주는 국제적인 전시 행사다. 2022년엔 충북 진천에서 열렸다. 김동규 사진작가 제공
재작년 충북 진천에서 다양한 분야 기업과 건축가들이 만나서 실제 집을 지어 가까운 미래의 집과 생활의 모습을 보여주는 ‘하우스비전’이라는 전시가 열렸다. 하우스비전은 세계적인 디자이너 하라 겐야의 기획으로 2013년부터 일본과 중국에서 세 번 개최됐다. 진천에서 개최된 네 번째 ‘코리아하우스비전’은 스마트팜 기업 ‘만나CEA’가 후원해 ‘農(농)’을 주제로 한 달간 열렸다. 기획자 하라는 “‘농’이라는 콘셉트는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지에 따라 인간의 미래를 달라지게 할 수 있는,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테크놀로지 영역”이라고 말했다. ‘코리아하우스비전’에 참여한 건축가와 디자이너는 9명으로 집뿐만 아니라 식재료의 소비와 물류, 농촌의 모빌리티를 통한 지역 네트워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역의 거주와 농업을 소개했다.

진천 ‘코리아하우스비전’ 전시에 선보인 ‘재배의 집’. 시골의 평상을 모티브로 의자 높이의 덱이 조경 사이에 넓게 펼쳐져 있다. 김동규 사진작가 제공
진천 ‘코리아하우스비전’ 전시에 선보인 ‘재배의 집’. 시골의 평상을 모티브로 의자 높이의 덱이 조경 사이에 넓게 펼쳐져 있다. 김동규 사진작가 제공
필자도 ‘재배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코리아하우스비전’에 참여했다. 도시는 자연에 대한 로망이 있고 농촌도 도시에 대한 로망이 있다고 보고, 도시와 농촌의 로망을 순환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 공간기획의 시작점이었다. 로망은 인류 문명을 발전시킨 발전소와 같다. 농촌에서 일하는 분들과 인터뷰해 보니 그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사업이 아니라 문화와 교류의 부족이었다. 따라서 “온실에 문화를 재배하자”는 ‘재배의 집’은 외부와 내부가 유연히 연결될 수 있는 온실과 같은 공간에 식물과 문화가 함께 자라나는 집을 계획해서 농촌의 문화적 로망을 실현시키고 동시에 도시에서 방문한 사람에게도 농촌의 로망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담았다. 온실 중앙에 작은 무대를 만들어 작은 결혼식이나 공연이 가능한 장소를 만들고 온실 안에 식물로 둘러싸인 5m×5m 크기의 공간 4곳 역시 전시와 세미나 등 다양한 문화를 재배하기 위한 공간으로 기획했다. 도시와 시골의 자립은 역설적으로 상호의존의 순환구조 속에서 가능하다. 기후위기 시대 도시와 시골 모두 ‘토지의 문화’를 재배하는 자발적인 농부의 자세가 필요하다.


김대균 건축가·착착스튜디오 대표
#5분 도시#콤팩트시티#온실#문화 재배#재배의 집#농촌#도시 문화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