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홍백가합전과 K팝의 활약[이즈미 지하루 한국 블로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30일 23시 27분


코멘트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일본 젊은이들에게 K콘텐츠는 동경 그 자체다. 올해 9월 일본 후쿠오카에서 우연히 고교생 손녀와 같이 다니는 60대 여성을 만났다. 우리는 버스를 놓쳐 전철을 타러 가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게 됐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걸 알자마자 고교생 손녀의 눈은 빛나기 시작했고, 한국어를 독학하고 있다며 내게 친근하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일본 젊은이들에게 K콘텐츠의 무게를 짐작했다.

지난달 13일, 올해 일본 가요계를 총결산하는 NHK 방송 ‘제74회 홍백가합전(紅白歌合戦)’에 44팀의 출전진이 발표됐다. 그중에 K팝 그룹 4팀, 그리고 K콘텐츠 그룹 2팀이 선발되어 주목받고 있다.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NHK 홈페이지에 따르면 출연진은 그해 앨범 매상, 인터넷 다운로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대한 조사, 라이브 및 콘서트 실적 등 활약한 성적과 여론조사를 통해 엄격하게 선발한 것으로, 6팀의 선정은 일본 사회에 K팝이나 K콘텐츠가 생각 이상으로 정착된 것을 짐작하게 한다.

6팀 중 여성 그룹은 르세라핌, 미사모, 남성 그룹은 스트레이 키즈, 세븐틴이다. 니쥬는 9명 중 8명이 일본인이며 제이오원은 멤버 11명 모두 일본인이기 때문에 K팝이나 J팝으로 구분하기 어렵지만 K콘텐츠에서 유래된 현지화된 그룹이기 때문에 같이 논하기로 하겠다. 나는 실은 처음에는 이 그룹의 반도 몰라 당황스러웠지만, 직접 영상을 보고 한 번 더 놀랐다. 빛나는 퍼포먼스에 압도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쿠오카에서 만났던 10대 소녀를 떠올리게 됐다.

홍백가합전은 1951년에 시작한 일본의 장수 방송으로, 매년 12월 31일 저녁에 홍팀과 백팀으로 나뉘어 선발된 가수들이 실력을 겨루는 프로그램이다. 1980년대 중반까지는 80% 전후의 시청률을 유지했을 만큼, 양력설을 지내는 일본에서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중행사와도 같은 방송이다. 요즘 시청률은 40%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지만, 그 대신 다양한 온라인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게 되어 여전히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인기를 확인하는 상징적인 방송임에 변함이 없다.

한편 한국인 가수들의 홍백가합전 출연 역사는 짧지 않다. NHK 홈페이지에 따르면 1987년 조용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어졌고, 특히 많은 가수가 출연한 해는 1989년 4명(조용필, 계은숙, 김연자, 패티김), 2004년 3명(보아, 이정현, Ryu), 2022년에는 K콘텐츠 그룹까지 포함한다면 5그룹이 출연했다. 올해는 2022년에 이어 모두 그룹으로 K콘텐츠로 넓게 본다면 가장 많이 출연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 선발된 그룹 중에는 한국에서 활동한 일본 여성 아이돌이 눈에 띄는데, 그들의 자신감 넘치는 퍼포먼스는 일본 젊은이들을 매료시키며 그들의 롤모델이 됐다. ‘미사모’는 ‘트와이스’의 멤버 9명 중 일본인인 ‘미나’, ‘사나’, ‘모모’로 구성된 3인조 유닛이다. 그리고 ‘르세라핌’ 멤버 5명 중 2명의 일본인 ‘사쿠라’와 ‘카즈하’가 그렇다. 2020년 12월 일본에서 데뷔했고, 올해 10월 한국에도 데뷔한 ‘니쥬’는 일본인의 귀여운 매력과 K팝의 힘이 넘치면서 완성도 높은 무대를 보여주며 성공적으로 현지화가 이뤄졌다.

또한 자니스 그룹의 부재로 인한 남자 아이돌 가수의 빈자리를 K콘텐츠 가수들이 톡톡히 채워주고 있다. 올해 일본 연예계의 큰 이슈는 자니스 소속사 사장을 지낸 자니 기타가와의 연습생 성폭력 파문이다. 이로 인해 오랫동안 남자 아이돌의 자리를 독차지해 온 자니스 소속 출신 가수들이 이번 홍백전에서 모두 제외됐다. 실제로 자니스 소속 아이돌이 선발되지 않은 것은 1979년 이래 44년 만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스트레이 키즈, 세븐틴, 제이오원이 멋진 노래와 퍼포먼스로 채워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이제 K팝이냐, J팝이냐를 구별해서 우열을 다투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으며, 오히려 현지화를 통해서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는 더 많아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널리 다양해지는 K콘텐츠에 대응하는 일일 것이다. 이번 홍백가합전을 통해 K콘텐츠가 일본 가요계에도 정착해 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일본에서 K콘텐츠의 우수성은 이미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대중문화를 향유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서로 새롭게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올해 홍백가합전에서 K콘텐츠의 활약이 기대된다.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일본#홍백가합전#k팝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