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2030세상/김지영]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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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벌써 개나리를 만났다. 봄이 왔구나. 찬 계절의 끝을 실감하며 얕게 안도한 것은, 지난겨울 유난히 추웠기 때문이다. 겨우내 많은 부고를 들었다. 대부분이 조부모상이었다. ‘우리 나이가 그럴 때지.’ 부모 세대가 부모를, 또래 세대가 조부모를 잃는 시기.

바지런한 부모님은 내가 어릴 때부터 사진, 비디오 등 추억을 정리하는 일에 정성이셨다. 그 덕에 집에서도 앨범을 들여다보는 일이 잦았는데, 그때마다 나는 곧잘 울곤 했다. 할머니 사진만 보면 ‘우리 할머니 돌아가시면 어떡해’ 통곡했다. 당시 할머니가 환갑 언저리 되셨을까. 젊고 건강한 할머니가 심지어 한 집 안에 계신데 뭐가 그리 서러웠던 걸까. 죽음은커녕 이별에 대해 트라우마 같은 것이 생길 만한 사건도 사연도 없었다. 추측건대 그건 그냥, 너무 소중했던 거다.

3년 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그 시절을 떠올렸다. 그 뒤로 30년 가까운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나는 30년 전부터 이날을 생각하며 미리 두려워하고 미리 울었다. 그러니까,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곧잘 끝을 생각했다, 소중할수록 더욱.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다가올 이별의 날을 수시로 예습하고 슬퍼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슬픔의 방향이 허무가 아닌 연민으로 흐른다는 것이었다.

가령, 부모님이 환갑을 넘기면서부터는 꿈으로도 꾸기 싫은 그들과의 이별을 피할 수 없이 종종 상상한다. 함께 여행을 가고 맛있는 것을 먹고 웃고 떠들다 보면 지금이 문득 애잔해진다. 남자 친구가 남편이 되면서부터는 그와의 이별도 잦게 상상한다. 그 외에도 소중한 이와의 멀어짐, 혹은 나 자신의, 내 의지가 아닌 삶의 종료에 대해 문득문득 상상한다. 그럴 때마다, 슬프지만 단호해진다. 모든 것이 사소해지고 그야말로 추억 지상주의자가 된다.

미래의 나를 상정하고 추억을 만든다. 말하자면 추억을 쌓고 있는 순간에 이미, 미래에 서서 오늘을 추억한다. 얼마간은 건강하지 않다 자각하고 있지만 각인된 성정이 쉬이 고쳐질 리 없다. 고쳐 쓰지 못할 바에야 긍정하기로 한다. 15년 치 다이어리 보따리와 고등학생 때 받은 편지를 품고 사는 삶도, 다가올 이별을 미리 감각하며 곁의 이들을, 오늘 하루를 두려워하며 사랑하는 삶도, 사실은 크게 나쁘지 않다.

거리는 다시 벚꽃놀이 인파와 새봄의 환희로 차오를 테지. 그 기쁨을 마다할 이유는 없지만, 새 계절, 새 시작의 문턱에서 조용히 결심한다. 이 봄에도 나는, 나와 당신의 죽음을 수시로 예습하고 기억하겠노라고. 김영민 교수는 저서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어려운 시절이 오면, 어느 한적한 곳에 가서 문을 닫아걸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불안하던 삶이 오히려 견고해지는 것을 느꼈다. … 삶으로부터 상처받을 때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갈 수 있다고.’

꽃이 피면 보러 가자, 아끼는 누군가와 혹은 그저 나 자신과.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이지만 어쩌면 해야 하는 전부인지도 모르겠다.


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봄#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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