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대학 위기, 현실 멀어진 결과… 사회난제 해법 찾는 고려대 될 것”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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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원 고려대 신임 총장… 현장 전문가 교수진 확충
학문-현실문제 간 괴리 좁히고, 융합과 통섭 학문으로 해답 제시
등록금, 선진국 10분의 1 수준… 대학 경쟁력 순위 하락 당연
사회 변화와 창의인재 육성 위해 학생 선발 자율성 보장 절실

김동원 신임 고려대 총장은 1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SK미래관에서 진행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 내내 ‘대학의 변화’를 강조했다. 김 신임 총장은 “사회 당면 문제를 해결하는 대학이 돼야 대학이 궁극적으로 생존하고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김동원 신임 고려대 총장은 1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SK미래관에서 진행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 내내 ‘대학의 변화’를 강조했다. 김 신임 총장은 “사회 당면 문제를 해결하는 대학이 돼야 대학이 궁극적으로 생존하고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모두가 ‘대학의 위기’를 경고하는 시대다. 학령인구 감소, 15년째 등록금 동결 등 대학의 생존을 위협하는 외생 변수도 많지만 대학 스스로 상아탑에 갇혀 위기를 자초한 측면도 적지 않다. 낡은 규제로 대학의 발목을 잡아 온 정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노사관계 전문가로서 평생 조직과 갈등 관리를 연구해온 김동원 신임 고려대 총장은 “대학의 교육 대상(학생)과 주체(교수), 내용이 모두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에는 대학이 사회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과감한 규제 철폐를 요구했다. 28일 제21대 총장으로 취임한 김 신임 총장을 1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만났다.》







―대학의 위기를 불러온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미래학자들이 보는 대학의 미래는 암울하다.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30년 후 거대한 종합대학들이 모두 유적지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대학이 ‘학문을 위한 학문’만 추구하면서 현실과 멀어진 결과다. 이젠 대학이 사회의 당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대학과 교수들을 정책 결정에 대거 참여시킨 미국의 ‘위스콘신 아이디어’도 그런 문제 의식에서 출발했다. 대학도 사회와 더 밀착된, 사회를 위한 대학이 돼야 한다.”

―하지만 정작 우수한 두뇌들이 의대와 법대 등 특정 직종을 위한 학문으로 쏠리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시대에 따라 특정 분야에 우수 인재가 몰리는 현상은 늘 있어 왔다. 다만 최근엔 학문을 출세 수단으로 보는 물질주의의 영향이 커졌다. 당장은 학생들이 의대, 법대를 좇지만 삶의 가치를 더 생각하는 시대가 오면 그런 경향도 바뀔 것으로 본다. 의대에 갔다가 기초 학문을 공부하러 떠나는 경우도 있다.”

―미래의 대학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교육 대상을 30∼70대까지 넓혀야 한다. 한 해 출생아 수가 20만 명대로 떨어진 상황에서 더 이상 20대 초반 학생들로 학부 정원을 채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젠 70세가 넘어도 공부해야 하는 세상이다. 교육 주체인 대학 스스로도 변해야 한다. 과거엔 상아탑에 갇힌 교수들이 주로 강의를 해 왔다면, 앞으론 현장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들이 대학으로 와 학문과 현실의 괴리를 좁혀야 한다. 가르치는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사회 문제가 학문 분야별로 발생하는 건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은 의학 분야뿐 아니라 노동, 국제정치 등 많은 학문이 복합적으로 들여다볼 문제였다. 융합과 통섭을 바탕으로 ‘깊고 넓은’ 학문을 지향해야 한다.”

―대학이 마주한 변화 중에 대화형 인공지능(AI)인 챗GPT도 빼놓을 수 없다.

“예전에 계산기가 나왔을 때 교수들이 쓰지 말라고 했다면 학습이나 학문 발전에 도움이 됐을까. 인류가 기술 발전을 막으려고 해서 막았던 적이 없다.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고, 또 선도해야 한다. 챗GPT도 마찬가지다. 잘 활용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챗GPT를 활용할 수 있는 과제를 내는 것이 대학이 할 일이다.”

―대학의 변화가 시급하지만, 재정 측면에서 교육 투자에 한계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등록금 문제부터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리 학교의 연간 평균 등록금이 약 800만 원인데, 미국 사립대는 5만∼7만 달러, 약 8000만 원에 달한다. 한국의 10배 수준이다. 일본과 싱가포르도 사립대는 수천만 원씩의 등록금을 받는다. 대학 등록금이 15년째 동결되다 보니, 물가 상승률을 반영한 실질 등록금은 23% 하락했다. 최근 국내 대학들의 세계 대학 경쟁력 순위 하락은 전혀 이해 못 할 현상이 아니다. 등록금을 10배 더 받는 대학과 같은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대학 스스로 개선할 부분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재정을 지나치게 등록금에만 의존하는 등 대학 스스로 노력을 덜 한 부분도 있다. 창업이나 기술 이전을 활성화해 수익을 다변화해야 한다. 총장 선거에서도 10가지 재정 확충 과제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생애주기형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고, 메타버스를 활용한 온라인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 등이다.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선임해 투명하고 효율적인 회계 및 예산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연간 예산의 3분의 2를 부채 탕감에 쓸 정도로 재정이 어려웠던 일본의 와세다대는 외부 CFO를 데려와 이를 극복하기도 했다.”

―정부의 교육 개혁 추진 의지가 강하다. 대학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정부가 대학 재정 지원 권한의 절반 이상을 각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한다고 발표했다. 긍정적인 방향이다. 현장과 멀리 있을수록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정책이 나온다. 각 지자체가 대학과 지역을 살릴 방안을 더 잘 찾을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대학 관련 규제는 더 많이 없애야 한다. 미국 고등교육 정책의 특징이 ‘지원은 하되, 규제는 거의 없애는 것’이다. 미국 대학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게 된 배경이다. 사회가 변하는 걸 대학이 빨리 따라가도록 도와줘야 한다. 한국이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권이지만, 대학 순위 100위권 학교는 손에 꼽을 정도다. 국가 경쟁력보다 대학 경쟁력이 떨어지는데 일류가 되긴 어렵다.”

―정부가 규제 완화를 강조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대표적인 것이 대학의 학생 선발 자율권이다. 공정성 이슈가 부각되면서 서울 주요 대학은 대학수학능력시험 중심의 정시 전형으로 40% 이상을 뽑아야 한다. 고려대는 원래 수시로 80%를 뽑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큰 틀을 바꿀 수밖에 없다. 학교는 교육 철학에 가장 맞는 학생을 뽑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쉽다.”

―고려대가 원하는 인재상은 무엇인가.

“고려대는 기능적인 지식인보다는 선 굵은 리더들을 많이 배출해 왔다. 입시 단계부터 국어 영어 수학을 잘하는 사람을 뽑기보단 그 학생의 잠재력을 본 결과다. 자라온 배경에 따라 개인의 잠재력이 덜 개발된 학생도 있을 수 있다. 개인 능력을 볼 때 현재의 지식과 기술로 평가할 수도 있지만, 앞으로의 잠재력이 더 중요하다. 문제 해결 능력이나 창의력, 자기 주도성이 뛰어난 학생을 뽑으려고 한다.”

―초중고교에서 아이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려면 어떤 교육이 이뤄져야 할까.

“학생이 글을 쓰는 능력이 중요하다. 스스로 글을 쓰려면 문제를 해결해가는 방식의 수업이 이뤄져야 한다. 구글에서 직원을 뽑을 때 ‘왜 맨홀 뚜껑이 둥그냐’는 문제를 낸다고 한다. 정해진 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창의력과 추론 능력을 보는 거다. 공식이나 답을 외우는 방식의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

―최근 의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의대 발전 방향을 제시한다면….

“국내외 의대와 대학병원들을 봐도 병원 규모와 의대 경쟁력(순위)은 무관하다. 미국 하버드대, 예일대, 존스홉킨스대 등도 병원 규모로는 상위권이 아니다. 고려대도 무리해서 병원 규모를 늘릴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만 의대 순위는 1위까지 끌어올리고 싶다. 연구 투자를 늘려 ‘고난도 치료는 고려대가 제일 잘한다’ ‘연구 성과는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공약으로 ‘글로벌화’를 강조했다.


“최근 10년 동안 국내 대학들의 국제화 수준이 하락했다. 코로나19 영향도 있지만 외국인 교수와 학생 비율도 많이 줄었다. 이들이 다시 돌아오게 만들어 글로벌화된 캠퍼스를 만들려고 한다. 특히 해외에선 한류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한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으려는 수요도 많이 생겼다. 고려대가 내국인만을 위한 대학이 돼선 안 된다. 세계를 무대로 하는, 전 세계인을 위한 대학이 돼야 한다.”

―고용과 노사관계 전문가라는 점이 대학 총장으로선 어떤 장점이 될까.

“대학은 다양한 집단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곳이다. 그런 갈등을 안고 조직을 앞으로 끌고 가야 한다. 노사관계와 닮은 점이 많다. 대부분 갈등은 부정적인 것으로 보지만, 노사관계에선 갈등은 당연한 것이고, 그걸 해소하는 것이 평생 공부했던 분야다. 대학도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자신이 속한 위치에 따라 변화를 원치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게 내 역할이다.”

김동원 고려대 총장
△대구(63)
△경북대사범대부설고
△고려대 경영학과
△미국 위스콘신대 경영학 박사
△고려대 기획예산처장, 노동대학원장 겸 노동문제연구소장, 경영대학장 겸 경영전문대학원장
△국제고용노동관계학회(ILERA) 회장,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장

인터뷰=김윤종 정책사회부장 zozo@donga.com
정리=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김동원#고려대 총장#글로벌화#대학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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