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영]“내 자리가 아닙니다”…왕좌 사양한 日銀 ‘프린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14일 2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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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라면 이상적인 포진이 아닐까요.”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 차기 총재로 우에다 가즈오 도쿄대 명예교수(72)가 내정됐다는 보도가 나온 10일. 아마미야 마사요시 일본은행 부총재(68)는 심경을 묻는 관계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한다. 불과 며칠 전까진 일본 정부가 아마미야 부총재에게 차기 총재직을 타진했고, 사실상 확정적이라는 분위기였다. 아쉬움은 없었을까. 그의 목소리는 쾌활했다. ‘낙마’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마미야 부총재는 ‘일본은행(BOJ)의 프린스’, ‘미스터 BOJ’ 등으로 불렸다. 도쿄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1979년 일본은행에 입행한 이래 기획국장, 이사 등 요직을 거치며 출세 가도를 달렸다. 2013년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가 취임한 이후 오른팔로 보좌해 왔다. 관행으로 봐도 그가 총재가 되는 건 당연해 보였다. 1960년대 한 번 민간은행 출신이 앉은 것을 제외하면 총재는 일본은행과 재무성(옛 대장성) 출신이 번갈아 맡아왔다. 구로다 총재가 대장성 출신이었으니 일본은행 출신의 아마미야 부총재가 이을 차례였다.

▷하지만 아마미야 부총재는 두 가지 이유를 들어 “나는 적임자가 아니다”라고 했다. 13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그가 든 첫 번째 이유는 이렇다. “일본은행 차기 체제는 오랫동안 지속된 통화완화 정책을 점검하고 수정해야 하는데, 현 정책을 주도해 온 내가 총재가 되면 객관적이고 공정한 재검토를 할 수 없다.” 2010년 포괄적 금융완화, 2013년 이차원(異次元) 금융완화, 현재의 장단기 금리조작 등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자신이 관여한 정책을 스스로 재검토하는 것은 일종의 자기부정이라는 얘기다.

▷이제는 일본은행이나 정부 관료 출신이 총재가 되는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다고도 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지낸 벤 버냉키와 재닛 옐런은 경제학자, 제롬 파월 연준 의장과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법률가 출신이다. 아마미야 부총재는 일본은행도 관료만의 시각을 넘어 더 크고 다양한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봤다. 마침 14일 지명된 우에다 총재 후보자는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 박사다. 당장 ‘일본의 버냉키’라는 소개가 나왔다. 총재가 되면 학자 출신으론 처음이다.

▷일본은행 총재는 국제적인 금융거물이다. 미 달러만큼은 아니지만 기축통화이자 주요 결제수단인 엔화의 향방이 총재의 입에 따라 결정된다. 한마디 한마디에 국제적 관심이 쏠리고 시장이 출렁인다. 이런 자리를 마다하는 결정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우리에겐 아무런 전문성도 없으면서 연줄로 자리를 탐하는 낙하산 인사, 정권 끝물에 무리하게 자리를 꿰찬 알박기 인사, 자리에만 눈이 멀어 원칙 없이 소신을 뒤집는 인사들의 모습만 눈에 익다. 그래서 아마미야 부총재의 선택이 낯설고도 신선하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일본은행#차기 총재#우에다 가즈오#왕좌 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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