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더 큰 ‘전쟁’의 시작[임용한의 전쟁사]〈245〉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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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전쟁사를 보면 전쟁 때마다 병사들 사이에 유행어처럼 떠도는 말이 있다. “크리스마스에는 집에 갈 수 있다.” 전황이 조금 호전되거나 전투가 잠잠해지기만 해도 이런 소문이 믿음처럼 퍼진다. 그렇다고 장교들이 쫓아다니며 아니라고 부인할 수도 없다. 나중에 병사들이 또 속았다고 투덜거리고, 어떤 지휘관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생각은 과학이 아니라 믿음이다. 하지만 그런 근거 없는 믿음이 영혼의 에너지가 되는 건 분명히 과학이다. 하지만 세상은 믿음과 반대로 움직인다. 20세기 전쟁사를 보면 항상 신년 대공세가 제일 무섭다. 규모도 크고, 무모하기도 하다. 왜 전황이 천체의 움직임과 더불어 작동하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독소전쟁, 6·25전쟁에서 신년은 더 무서운 신년이었다.

1941년 모스크바를 향해 파죽지세로 진군하던 독일군은 11월이 되자 힘에 부쳐 주저앉았고, 12월에는 수세로 돌아서야 했다. 전황에 고무된 스탈린은 전 전선에 걸친 대반격을 명령했다. 사령관 주코프는 반대했지만 스탈린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반대편에서는 철수해서 방어선을 효율적으로 정비하자는 독일 장군들의 제안을 히틀러가 거부했다.

1942년 1월 러시아 북부 레닌그라드에서 남쪽 크리미아반도까지 전 전선에서 소련군과 독일군이 충돌했다. 전황은 말 그대로 뒤범벅이었고, 어느 쪽도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한 채 수백만의 생명을 하늘길로 보냈다.

다음 해인 1943년엔 신년 대공세라는 것이 없었는데, 병사들은 줄어들어도 전쟁을 운용하는 능력은 늘어 가서 크리스마스, 신년과 무관하게 연속적인 대공세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신년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거북하다. 그러나 내 삶을 바꾸고 승리를 가져다주는 것은 감성적 사고가 아니라 냉철한 분석과 투지이다. 여러 가지 태풍이 기다리고 있는 2023년은 신년에 이런 말을 하기에 적절한 한 해인 듯하다. 적의 대공세는 위대한 승리의 전제조건이다.


임용한 역사학자



#신년#전쟁#승리의 전제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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