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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BTS가 K팝에 던진 숙제들[동아시론/이지영]

이지영 한국외국어대 세미오시스 연구센터 HK연구교수
입력 2022-06-21 03:00업데이트 2022-06-2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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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그룹 활동 중단 택한 BTS
시장 구조상 아이돌 휴식과 성숙 불가능 시사
한국의 자랑 된 아이돌들, 쉴 공간 필요하다
이지영 한국외국어대 세미오시스 연구센터 HK연구교수
방탄소년단을 처음 알아가던 시기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신인 그룹인 그들이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많은 분들이 들어주시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반복한다는 점이었다. 자신을 기억해 달라거나 사랑해 달라는 신인 가수의 인사말은 익숙하게 들어왔지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다는 말은 그와 전혀 달랐으니까.

최근 방탄소년단은 진솔하게 현재 자신들이 겪어온 어려움들을 이야기하며, 방탄소년단의 제2막에 대해 팬들에게 고백하는 시간을 가졌다. 개별 활동이 해체로 가는 길이 아님을 말하며, 당분간은 단체 활동보다는 개인 활동을 통해 각자의 정체성도 찾으며 발전하는 시간을 갖겠다는 내용이었다. 7명의 시너지 효과를 사랑한 팬들로서는 한편으로 아쉽지만, 그들의 선택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앞으로의 선택에도 함께하겠다는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

이번에 발매된 앨범 ‘프루프(Proof)’의 수록곡 ‘Yet To Come’과 ‘For Youth’의 가사를 보면 그들의 이번 선택이 갑작스럽지 않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방탄소년단은 “변화는 많았지만 변함은 없었다”고 “A new chapter/매 순간이 새로운 최선/지금 난 마치 열세 살 그 때의 나처럼 뱉어”라며 노래가 좋아 그저 달릴 뿐인 아이였던 그때로 “긴긴 원을 돌아 결국 또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신곡 ‘Yet To Come’에서 고백한다. “아직도 배울 게 많고 채울 게 많은” 그들은 “그날을 향해 더 우리답게” 살아가기 위해 개인 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제2막에 대한 기대를 노래로도 밝히고 있다.

앞서 언급한 영상에서 리더 RM은 자신이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K팝도 그렇고 아이돌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사람을 숙성하도록 놔두지 않아야 하는 것 같다”며 끝없이 시간을 쪼개가며 활동을 이어가야 하는 이 산업 시스템에서는 스스로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는 어려움을 솔직히 털어놨다.

방탄소년단은 2018년 유엔 연설에서 “Love Yourself”를 이야기했다.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찾고, 스스로에 대해 말함으로써 자신의 목소리와 이름, 나아가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되는 길이라는 것이 그들의 메시지였다. 가장 높은 곳에서 변화를 택한 그들의 용감한 결단은 자신들이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그 메시지들이 얼마나 진정성 있는 것이었는지를 다시 확인할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의 구조에서는 아이돌 아티스트의 휴식과 성숙이라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현실도 드러났다.

불가능해 보이는 스케줄들을 소화하며 쉼 없이 달리면 누구든 소진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좋은 모습만을 보여줘야 한다는 과도한 부담을 요구받는 아이돌 문화는 최정상인 방탄소년단마저 힘겹게 하는데, 다른 아이돌 가수들은 어떠하겠는가. 상징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아이돌 아티스트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없다. 어느 정도 연차가 차기 전에는 숙소 생활을 해야 하고, 그룹이 꾸준히 함께 모여 연습하고 무대에 서야 하며, 무대 뒤에서도 수많은 콘텐츠에 참여하고, 다음 컴백을 준비해야 하는 아이돌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능력을 키우며 성장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 것이다.

방탄소년단만큼 자리를 잡아야만 성숙의 시간을 가지겠다고 말할 수 있는 산업은 너무도 많은 아티스트에게 폭력적이다. 현재 전 세계에 뻗어나가고 있는 한국의 대중문화가 더욱 굳건하게 자리매김하려면, 아이돌 산업은 아티스트 개개인의 인격적, 예술적 성장이 가능한 시간적, 공간적 여유를 주는 시스템으로 변해야 한다. 아이돌도 인간이라는 당연한 사실, 아이돌에게도 쉬고 성장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K팝이 한국의 자긍심과 강하게 연결되는 것도 한편으로 아이돌 아티스트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한국의 자랑’처럼 방탄소년단이 짊어져야 했던 이름들은 자부심과 동시에 큰 부담감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이는 아이돌이 ‘공인’이라는 이름으로 때로 정치인보다도 더 높은 도덕적 잣대를 마주하는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생활까지도 기사나 콘텐츠가 되는 아이돌에게 필요한 것은 쳐다봐야 할 카메라가 없는, 표정 하나, 손짓 하나까지 ‘논란’거리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자기만의 방일 것이다.

때로는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나노 단위’로 쪼개어 소비하는 구조에 가담하는 것 같아 죄책감을 느끼는 팬들이 많다. 팬들이 아이돌뿐 아니라 아이돌을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도, 아이돌의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이지영 한국외국어대 세미오시스 연구센터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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