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정은]내공과 신선함을 갖춘 무대 배우들의 전성시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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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문화부 차장
김정은 문화부 차장
드라마 PD 및 영화감독, 캐스팅 디렉터들은 작품을 앞두고 ‘숨은 보석’을 찾을 때 서울 대학로 연극 무대를 곧잘 두드린다. tvN ‘응답하라’ 시리즈와 ‘슬기로운’ 시리즈를 연달아 성공시킨 신원호 PD와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녹두꽃’ 등을 연출한 신경수 PD가 대표적이다.

신원호 PD가 ‘슬기로운 감빵생활’ 주인공 제혁 역을 놓고 한참 고민에 빠졌을 때였다. 머리도 식힐 겸 연극 ‘남자충동’을 보러 간 날, 그는 진짜 ‘제혁’을 찾았다. 막이 끝나자마자 ‘남자충동’에서 선 굵은 연기를 선보인 연극배우 박해수를 만나 드라마 주인공으로 전격 캐스팅했다. 스타 배우를 기용하고 싶은 유혹이 없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수년 전 이렇게 답했다. “시청률과 화제성을 감안한다면 스타 배우를 쓰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기존 작품들을 보면 새로운 인물이 주는 영향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박해수는 신 PD의 믿음에 보답하듯, 4년 뒤 ‘오징어게임’의 주연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신 PD는 ‘슬기로운 의사생활’ 여주인공 역시 연극과 뮤지컬에서 활약 중이던 배우 전미도를 선택했다. 대중에겐 낯선 ‘신인’이나 다름없는 배우였다.

진선규 윤나무 등 많은 연극배우를 자신의 드라마에 출연시킨 신경수 PD에게도 “무대 연기와 영상매체의 연기는 결이 다른데 왜 연극배우를 캐스팅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이에 신경수 PD는 “새롭고 실력 있는 배우를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바로 연극 무대”라고 답했다.

‘오징어게임’이 낳은 배우 오영수 신화도 연극 무대에서 시작됐다. ‘오징어게임’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은 ‘깐부 할아버지’ 일남 역으로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신선한 배우를 원했다. 황 감독은 지난해 언론 인터뷰에서 “오영수 배우의 무대 연기를 직접 보고 캐스팅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정작 공연계에선 이런 배우들의 행보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한 공연 연출가는 “일부 배우의 경우 영상매체 활동으로 인지도가 높아지자 출연료가 10배 이상 뛰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한 공연 제작사 대표는 관련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공연 무대가 무슨 배우 사관학교냐”며 언성을 높인다.

일각의 부정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무대로 ‘금의환향’한 배우들 덕분에 신규 관객 유입 효과를 낳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1 종영 후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돌아왔던 전미도가 대표적이다. 코로나19 여파로 공연계가 휘청이는 와중에도 전미도는 자신의 출연 회차 공연을 전석 매진시켰다. 온라인에서 이른바 ‘암표’ 거래가 이뤄지는 바람에 제작사가 경고문을 올렸을 정도다.

업계의 이해관계와는 별개로 대중 입장에선 제2의 박해수, 또 다른 전미도와 같은 내공 있는 스타의 출현은 반가운 일이다. 팬데믹 여파 속 대중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을 새로운 ‘숨은 보석’은 누구일까. 코로나로 잠시 멈춘 일상이 회복돼 연출가들의 발품팔이에 가속도가 붙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해 본다.


김정은 문화부 차장 kimje@donga.com


#무대 배우#드라마#신원호pd#박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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