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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北 위협 키워도, 美 보상 작아질 뿐이다[동아시론/김정]

김정 북한대학원대 교수
입력 2022-03-29 03:00업데이트 2022-03-29 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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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17형’ 발사, 한반도 위기 순환 재시동
北 도발 비용 키웠지만 美 보상 감소세 뚜렷
尹-바이든 대북 안정관리 호흡 속히 맞춰야
김정 북한대학원대 교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을 발사한 북한이 한반도를 긴장 격화의 격랑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4년여 만에 단행한 평양의 ICBM 시험발사 ‘모라토리엄’ 선언 파기는 우크라이나 전쟁 대응에 쫓겨 경황이 없는 워싱턴과 정권 이양 한가운데 신구 권력 정쟁에 여념이 없는 서울을 동시에 겨냥한 경고장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조건 없는 대화’ 제의를 배척하고 윤석열 한국 대통령 당선인의 ‘힘을 통한 평화’ 구상을 제압하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살벌한 격문(檄文)인 셈이다. 누항(陋巷)의 공론장은 한반도가 ‘시계 제로’의 위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근심의 목소리로 가득하다.

돌이켜 보면 익숙한 시간의 재림이다. 지난 30년 동안 북한이 촉발한 한반도 위기는 모두 닮은꼴을 하고 있다.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에서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로 이어졌던 제1차 한반도 위기, 2002년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 개발에서 2005년 6자회담 ‘9·19 공동성명’으로 이어졌던 제2차 한반도 위기, 2017년 북한의 핵실험 및 ICBM 시험발사에서 2018년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던 제3차 한반도 위기는 모두 동일한 순환으로 작동했다. 한반도 위기 순환은 위기 저점에서 출발해 일시에 긴장 상승 국면을 조성해 위기 정점에 도달한 이후 긴장 하강 국면으로 전환해 다시 위기 저점으로 복귀하는 양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화성-17형’ 발사로 북한은 이 낯익은 한반도 위기의 순환에 재시동을 걸었다.

한반도 위기 정점마다 미국은 어김없이 선제타격 위협과 정책보상 협상의 양면으로 이뤄진 강압외교를 수단으로 긴장 하강을 꾀했다. 클린턴 행정부의 ‘정밀 타격’ 계획과 경수로 제공, 부시 행정부의 ‘정권 교체’ 선언과 중유 지원, 트럼프 행정부의 ‘코피 작전’ 입안과 정상회담 수락이 각각 한반도 위기 때마다 미국 강압외교의 짝패를 구성했던 정책 수단이었다. 선제타격 위협이라는 군사적 억제책으로 북한의 긴장 상승 행동이 유발하는 현상 파괴력을 제한하면서, 정책보상 협상이라는 외교적 유인책으로 북한의 긴장 하강 행동이 촉진할 현상 복원력을 촉진하는 양면 전략으로 미국은 지금껏 한반도 ‘위기 안정성’을 관리해 왔다. 평양의 ‘모라토리엄’ 선언 파기는 결국 이 익숙한 미국 강압외교의 양면 전략을 전제로 다시 한 번 워싱턴의 정책보상을 기대하고 있다.

순환하는 한반도 위기는 북한이 평화 배당에서 국익을 추구하는 ‘평화맹(平和盲)’은 물론 아니지만 전면 전쟁에서 국익을 추구하는 ‘전쟁광(戰爭狂)’ 또한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북한은 한반도 평화 상태보다는 높은 저강도 긴장 국면과 한반도 전쟁 상태보다는 낮은 고강도 긴장 국면 사이를 끊임없이 오르내리면서 위기의 최적점을 찾아 국익을 추구하는 노회한 ‘기회주의자’에 가까웠다. 미국의 입장에서 평양의 완력 시위가 거슬린다고 전쟁으로 치닫거나 평양의 매력 공세에 빠져들어 평화를 낙관하는 일이 모두 위태로운 정책 대응일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문제는 북한의 긴장 상승 행동이 투입한 비용만큼 그 효과성이 증가하지 않는 ‘수확체감(收穫遞減)’의 법칙을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경수로 건설을 약속했던 ‘제네바 합의’와 경제제재 해제를 거부했던 ‘하노이 노딜’을 비교하면 미국의 정책보상 감소 추세가 뚜렷하다. 긴장 상승 억제책의 비중을 높이고 긴장 하강 유인책의 비중을 낮추는 정책조합으로 바이든 대통령이 평양의 도발에 맞설 확률이 높아지는 역사적 맥락이고 그 결과 김 위원장이 기대하는 워싱턴의 정책보상을 성취할 확률이 낮아지는 구조적 조건이다.

지구촌을 ‘민주국가 대 독재국가’의 대립 구도로 보다 명확히 가른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이 북한의 도발에 경제제재 완화라는 보상으로 한반도 위기 안정성을 관리할 비용을 크게 높였다. 141개국의 찬성으로 유엔총회가 채택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규탄 결의안’에 반대한 5개국에 북한이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지지는 물론 국제 연대를 희생하면서까지 바이든 대통령이 국제법을 위반한 독재국가의 도발에 정책보상으로 호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미국이 군사적 억제 및 경제적 봉쇄를 강화하여 북한 도발의 기회비용을 높이는 방향으로 강압외교에 나선다면 한국의 대북정책 선택지는 크게 좁혀질 수밖에 없다. 윤 당선인이 정권이양 신구 권력 갈등에서 벗어나 바이든 대통령과 호흡을 맞추어 한반도 위기 안정성을 관리하는 일에 조속히 나서야 할 연유이다.

김정 북한대학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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