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망대해에서 길 찾아준 고마운 별님[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56〉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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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태평양에서는 무수한 저기압이 발생한다. 필리핀 남부 해역에서 발생한 저기압은 미국 북서부로 동진해 간다. 지구의 자전 때문이다. 부산을 출항해 미국으로 갈 때 선박은 저기압과 같은 방향이다. 저기압은 속도가 빨라서 배를 앞질러 간다. 선장은 기상도를 보며 새로 발생한 저기압을 확인하고 배와 마주치는 시간을 확인한다. 저기압의 앞에 우리가 있어야 한다. 저기압이 뒤에서 접근하면 배는 뒷바람을 받게 된다. 동진하는 우리 배에 서풍이 불어주니 순풍에 돛 단 격이다. 속력도 2노트(시속 3704m) 정도 더 나가 기름이 절약돼 좋다. 저기압이 계속 발생하면 뒷바람을 받으면서 미국까지 잘 도착할 수 있다. 건너올 때에는 가능하면 대권 항로(출발점∼종착점을 연결하는 최단거리)를 이용해 알류샨 열도 근처까지 올라가서 항해한다. 저기압을 가장 덜 마주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별자리를 보고 위치와 방향을 찾아가는 원시적인 방법이 오랫동안 바다를 지배했다. 북극성을 보고 가면 북쪽이 나온다. 선박이 적도 남쪽으로 가면 남십자성을 찾아야 한다. 조금 더 발전된 방법이 수평선으로부터 별까지 고도를 재고 위치를 계산하는 방법이다. 낮에만 수평선이 잘 보인다. 그런데 별은? 별은 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밤이 되어야 별이 잘 보이지만, 수평선을 볼 수 없다. 하루에 두 차례 수평선도 어느 정도 보이고 별도 보이는 그런 시점이 있다. 오전 5시경, 동트기 직전이라서 수평선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숙달되면 별이 섹스턴트(sextant·육분의)에 잡힌다. 이렇게 방향이 서로 다른 밝은 별 4개의 고도를 잡는다. 계산식을 통해 구한 4개 직선이 만나는 곳이 현재 나의 위치다.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관측을 통해 별들의 고도를 알면 현재 내 위치를 구할 수 있는 책자를 만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별 중 시리우스, 카노푸스가 가장 밝다. 이어서 스피카, 안타레스, 알데바란이 있다. 별자리뿐 아니라 달이나 태양을 통해서도 위치를 구할 수 있다. 그런데 5시 반이 되면 날이 너무 밝아 별님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에 30분 만에 이 ‘숭고한’ 작업을 모두 마쳐야 한다.

날씨가 흐리면 천체를 이용한 위치 찾기가 불가하다. 전파를 이용하면서 오메가, 로란 같은 기지국이 각국에 세워졌다. 그 뒤 인공위성을 이용해 위도와 경도를 구하는 위성항법(NNSS)을 만들었다. 이것이 자동차에 달린 내비게이션으로 발전돼 10m 단위까지 정확하게 측정한다. 별을 이용한 위치 측정 시 1마일(약 1.6km) 오차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제는 오차가 10m로 정확해졌다. 나무 선박이 철선으로, 돛을 이용한 추진력이 연료유를 사용하는 엔진으로 발전했다. 이에 더해 선박 위치 정확도가 1000배 가까이 진화했다. 과학의 발달은 참으로 눈부시다. 그러면 더 이상 별을 이용하는 천문항법은 필요 없는가? 사이버 테러로 위성항법이 작동하지 않으면 여전히 별을 이용해 위치를 찾아야 한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망망대해#길#위치#방향#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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