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에 임전무퇴 대응은 어리석은 일”[동아시론/엄중식]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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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적 일상회복 이후 코로나19 악화일로
재택치료 인프라 미비-중증 병상 부족 지속
의료진 한계상황에 의료대응체계 붕괴 우려
방역-경제적 피해 균형 찾는 탄력대응 필요

엄중식 가천대 의대 감염내과학 교수
엄중식 가천대 의대 감염내과학 교수
11월 단계적 일상 회복이 시작된 이후 코로나19의 확산이 악화일로이다. 확진자 증가는 예상했던 바이지만 중증환자 발생률에 대한 예측이 어긋나고 재택치료 인프라와 중증병상이 확충되지 않은 상태가 대응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정부는 성인의 3차 백신 접종과 청소년의 백신 접종을 적극적으로 권고하고 방역패스를 강화하면서 위기를 타개하려 하지만 백신 접종률을 올리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방역패스에 대한 반발을 설득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새로운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의 지역사회 전파 확산세도 심상치 않다.

방역과 의료현장은 효율적인 대응을 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빠지고 있다. 선별진료소에서 검사 대기를 두세 시간씩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확진자의 방역망 내 관리 비율은 30% 전후까지 감소했다. 이제는 사실상 역학조사는 포기한 상태나 마찬가지다. 수도권부터 중증병상 가동률이 80%를 넘기기 시작하더니 이제 전국의 중증병상 가동률이 80%를 넘기면서 중환자의 입원이 매우 어려워지고 있다. 이 가운데 재택치료 중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병원 이송 전 사망하거나 이송 직후 사망하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하루 사망자가 80명까지 올랐고 앞으로 하루 100명 이상 사망자가 나올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한계를 넘기며 소진된 의료진이 정말 더 버티기 어렵다는 말이 현장에서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다간 자칫 의료대응체계가 붕괴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소리가 점점 무겁게 다가오는 수준이 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강력한 거리 두기가 시급하다. 지금 당장 강력한 거리 두기를 시작해도 2, 3주가 지나야 효과가 나타난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지난 4차 유행 당시 현재의 3분의 1 수준이던 확진자 발생 상황에서 시행한 4단계 거리 두기 수준의 운영시간 제한이나 인원 제한으로는 단기간에 유행을 꺾기가 어렵다. 확실한 손실 보상을 전제로 오후 6시 이후 필수 활동을 제외하고 가능한 한 모든 사회경제적 활동을 멈추어야 확산세를 누를 수 있다. 확진자 발생을 2000명 이하로 줄이고 중증병상 가동률을 70% 미만으로 감소시킨 상태에서 상황 정리를 해야 한다.

성인의 백신 3차 접종률을 80% 이상으로 올리고 청소년 백신 접종도 가급적 빠르게 진행해서 중증환자 발생을 억제하고 전체 유행도 줄여야 한다. 안전한 재택치료를 위하여 재택 환자의 외래 진료 또는 단기 입원 시스템을 지역사회 의료기관의 도움으로 구축해야 한다. 1차 의료기관의 참여를 통하여 재택 확진자의 의료 모니터링 인프라를 최대한 확충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중증병상 확보는 매우 어렵고 비탄력적인 요소이지만 중환자실을 운영하는 가능한 한 많은 의료기관의 참여를 유도해야 숨통이 트인다. 중증 병상 확보를 위해서는 확진자의 입원 동선을 분리시키고 차단벽을 설치하는 것은 물론이고 의료진 지원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비용이 필요하다. 의료진이 안정적으로 진료할 수 있도록 특별한 지원을 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이 밖에도 유행 차단을 위한 지역사회 전략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에 정해진 길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보다 위드 코로나라는 이름으로 방역 완화를 시작한 나라 중 안정적으로 조절하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그러나 나라마다 역량 범위 내에서 코로나19의 피해와 사회경제적 피해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겪고 있다. 현재로서는 사회경제적 피해를 없애고 코로나19 유행도 종식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쉽지 않다. 경제적 피해가 누적되어 방역 완화를 선택하였지만 코로나19 피해가 더 커지는 상황이라면 경제적 피해를 감수하고 코로나19 유행을 줄이는 탄력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대하여 임전무퇴라는 자세로만 대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델타는 물론이고 오미크론 변이 이후에도 새로운 변이가 유행할 가능성도 있다. 적어도 3, 4년은 이런 힘겨운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 신종 감염병의 불확실성 앞에 우리는 겸손해야 하고 바이러스보다 더 현명하고 단호한 결단을 해야 한다. 지금은 강력한 거리 두기로 당장의 유행을 꺾어 시간을 번 뒤 다시 단계적 일상 회복을 시작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도록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엄중식 가천대 의대 감염내과학 교수


#바이러스#임전무퇴#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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