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희균]우리만 모르는 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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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향한 애정 끓어오른 한 해
코로나 이후 더 커질 문화의 힘

김희균 문화부장
김희균 문화부장
위드 코로나 전환 이후 만난 두 사람에게 토씨까지 똑같은 말을 들었다.

“지금 우리만 모른다니까요!”

얘기인즉슨 세계 도처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들끓고 있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선 이를 체감하지 못한다는 거였다. 팬데믹으로 국경이 막힌 2년 동안 달궈진 한류 열기가 우리의 가늠을 뛰어넘었다는 말이었다.

이 중 한 명은 한류와 무관한 공학자다. 그는 매년 미국에서 열리는 연구모임에 참석해왔다. 올해 중단된 행사를 내년에 재개하기 위해 최근 온라인 회의를 했는데, 한 미국 교수가 ‘이번에는 한국에서 하면 어떠냐’는 말을 꺼냈다고 한다. 그러자 40∼70대에 걸친 외국 학자들이 ‘오징어게임’ 후기, 자녀가 아미(BTS 팬클럽)라는 이야기, 한국 음식 수다를 와글와글 쏟아냈다고 한다.

그는 “20년 전 미국 유학 시절엔 ‘재퍼니즈? 차이니스?’라는 말을 지겹게 들었다. 코리안이라고 하면 아예 모르거나 ‘노스 코리아?’라고 했다. 2년 전 미국에 갔을 때도 그저 ‘아시안’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다들 한국을 이야기한다”고 했다.

다른 한 명은 한국관광공사 임원이다.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성황을 이룬 오징어게임 체험행사 얘기를 하다가 “요즘 해외에서 한국 행사를 한다고 하면 각 정부나 기관이 적극 나서서 다른 나라 행사보다 우선권을 준다. 한류 팬들이 열광적으로 입소문을 내고 참여해 무조건 흥행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아시아는 물론이고 유럽, 중동에서도 한국 여행 문의가 폭주한다고 전했다. 트래블버블 협정에 따라 15일 한국에 온 싱가포르 관광단에는 유력 인플루언서들이 포함됐고, 관련 게시물에는 ‘우리는 언제 한국에 입국할 수 있냐’는 각국 사람들의 댓글이 이어진다.

코로나 이전에도 이미 K팝과 드라마는 아시아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다. 코로나로 사람의 이동길이 막힌 사이 영화 ‘기생충’과 ‘미나리’가 각국에 뿌리내리고, BTS가 빌보드를 비롯한 각국 음악 차트 정상을 차지하고, 오징어게임이 메가 히트를 치며 한국 문화는 길을 더욱 넓혔다. ‘믿고 보는 K콘텐츠’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 자가격리 비용까지 부담하며 한국 공연단을 초청하는 나라도 많다. 52년 전통의 미국 어린이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에는 첫 아시안 캐릭터로 한국계 미국 여자 어린이 ‘지영’이 등장한다. 영어를 쓰는 지영은 ‘김밥’ ‘찌개’ ‘잡채’를 한국 단어 그대로 말한다.

이처럼 세계가 한국을 바라보게 만든 건 문화의 힘이다. 한국 문화에 자부심을 갖는 우리 젊은이들은 더 이상 ‘국뽕’이라는 비하성 단어를 입에 담지 않는다. 이들은 백범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에 담긴 문구를 사랑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중략)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여행업계 종사자의 표현을 빌리면 세계적으로 한국 여행에 대한 열망이 “곧 김을 뿜을 압력솥처럼” 꽉꽉 차오르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실제로 밀려들어오기 시작한다면 그제야 우리도 스스로의 인기를 확인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또 우리가 해외에 나간다면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K팝, 마트나 식당에서 만나는 한국 음식들, 그리고 “한국인이냐?”는 호의 섞인 질문에서도 이를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이후, 우리도 알게 될 높은 문화의 힘을 빨리 느끼고 싶다.

김희균 문화부장 foryou@donga.com
#한국#관심#애정#한류 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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