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박원곤]北이 만든 착시의 덫에 걸린 文정부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입력 2021-09-29 03:00수정 2021-09-29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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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보유국 인정-한미 무장해제 요구한 北
‘군비경쟁’ 프레임으로 불법 핵개발 가려
일방구애 중단, 차기 정부 정책공간 열어야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북한은 3월 이후 중단했던 미사일 도발을 재개하면서 공세를 펼치고 있다. 동시에 김여정 부부장이 25일 담화를 통해 “북남 수뇌회동”이라는 단어를 던져 ‘어게인 2018년’을 외치는 문재인 정부를 ‘착시 현상’에 빠뜨리고 있다. 북한이 순수한 의도로 남한과 관계 개선을 모색하지 않는다는 것은 1972년 남북대화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수없이 경험했던 사실이다. 북한이 표명한 남북대화를 위한 선결 조건인 ‘이중기준’과 ‘적대시 정책 철회’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내포한다.

첫째, ‘이중기준’ 철회를 요구한 것은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라는 주장으로 읽힌다. 9월 15일 문재인 대통령 실명을 거론하면서 발신한 담화에서 김여정은 이중기준을 “자기들의 류사행동은 평화를 뒤받침하기 위한 정당한 행동이고 우리의 행동은 평화를 위협하는 행동으로 묘사하는 비론리적이고 관습적인 우매한 태도”로 정의한다. 북한이 거침없이 몰아붙이는 핵미사일 개발은 “국방과학발전 및 무기체계개발 5개년 계획”이라면서 친절하게 “남조선의 ‘국방중기계획’”과 같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한국이 북한과 관계 개선을 원한다면 “‘도발’이라는 막돼먹은 평”을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윽박지른다. 북한이 시도하는 핵탄도미사일 개발은 국제법적 효력이 있는 2006년 유엔 안보리 결의안 1718호를 위반한 불법행위다. ‘도발’로 규정하고 비판하지 않는다면 핵보유국으로 사실상 인정하는 행위가 된다.

둘째, ‘적대시 정책 철회’는 북한 위협에 대한 한미 무장해제를 요구한 것이다. 24일 리태성 북한 외무성 부상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한반도에 전개된 미군, 전략자산, 연합훈련’ 등으로 특정했다. 김성 유엔 주재 북한대사도 27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합동군사연습과 전략무기 투입을 영구 중지하는 것”으로 명시했다. 김여정은 24일 담화에서 이중조건과 함께 적대시 정책을 남북대화를 위한 “선결조건”으로 내세운 바 있다. 부연하면 한국 또는 미국이 북한과 의미 있는 대화를 재개하기 위해서는 북한 위협에 대응하는 연합훈련과 전략자산 전개와 같은 대비 태세를 포기하라는 것이다.

셋째, ‘군비경쟁’ 프레임을 차출하여 핵개발의 불법성을 감추려 한다. 이중 잣대와 유사한 논리로 한미동맹 강화를 “지역의 전략적 균형을 파괴하고 북과 남을 끝이 없는 군비경쟁에 몰아넣는 참혹한 결과만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김여정의 25일 담화도 “조선반도 지역에서 군사력의 균형을 파괴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고 밝힌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방한한 날인 15일 중국의 체면을 깎으면서까지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한국이 당일 성공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연계되어 보인다. 군비경쟁 논리로 치환하기 위한 의도적 택일일 수 있다. 북한의 시도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국내외 여론은 최근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한국의 무기 개발과 연계하여 한반도 ‘군비경쟁’으로 규정함으로써 북한의 불법 핵무기 개발이 가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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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다시 한번 시험대에 섰다. 25일 김여정이 담화를 통해 밝힌 종전선언,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에 한껏 고무되었지만 북한은 미사일 발사로 바로 청구서를 내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자초한 측면도 크다. 북한이 작년 6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남북 관계를 ‘대적 관계’로 선포하였음에도 일방적 구애를 멈추지 않았다. 급기야 철 지난 종전선언을 부활시키는 승부수를 던진 끝에 받아낸 김여정의 ‘북남 수뇌상봉’은 바로 대가를 묻고 있다. 북한의 명백한 불법적 핵무기 개발 행위를 ‘도발’로 규정하고 비판하면 북한은 차갑게 돌아설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요구한 “공정성과 서로에 대한 존중의 자세”로 수용한다면, 즉 도발에 대해 ‘침묵’한다면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선택이 된다.

북한은 1월 8차 당대회 때 이미 “힘겨운 정면돌파”를 선언했고, 6월 8기 3차 전원회의에서 방역체계를 ‘중장기’로 운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내부 사정이 변수이지만 적어도 내년까지는 본격적 대화에 나서지 않고 한미를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 더불어 역시 8차 당대회 때 김정은이 지시한 전술핵을 비롯한 첨단 무기체계 개발은 5개년 계획으로 제도화되었으므로 지속성을 갖는다. 따라서 당분간 북한은 공세 국면을 유지한 후 내년 2월 베이징 올림픽과 3월 한국 대선을 즈음하여 평화 공세로 전환할 수 있다. 임기 말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일방적 구애를 중단하고, 지난 5년을 복기하면서 다음 정부가 ‘바른 대북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공간을 열어두어야 할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북한#미사일 도발#착시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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