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그냥 엄마다[이정향의 오후 3시]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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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오다기리 조의 ‘도쿄 타워’

이정향 영화감독
이정향 영화감독
일본 규슈의 시골 동네. 엄마는 아들 하나를 바라보고 살았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남편과는 일찍 헤어지고, 억척스럽게 일을 해서 아들을 도쿄의 대학생으로 길러낸다. 하지만 철없는 아들은 4년 내내 노느라 졸업을 못 하고, 엄마는 이런 아들에게 “열심히 좀 하지 그랬어…”라는 말만 거듭한다. 그러고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1년 더 뒷바라지한다. 그런데도 정신을 덜 차린 아들은 엄마의 피 같은 돈을 유흥비로 날리며 허송세월하다가 엄마가 병에 걸리자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생활인으로 변신한다. 엄마를 도쿄로 모셔와 같이 지내며 밀린 효도를 하지만 엄마는 7년 후 세상을 뜬다. 병실 창밖으로 도쿄 타워가 찬란히 빛난다.

몇 집 건너 하나씩은 있을 법한 얘기를 2시간 반 동안 끌고 간다. 느릿느릿 노 저어 가는 배를 보는 기분이지만 묘하게도 눈을 뗄 수 없다. 영화가 끝나면, 한낱 배를 봤다기보다 바다와 하늘과 우주를 감상한 기분이다. 도쿄 중심가에 우뚝 서 있는 도쿄 타워가 길을 잃은 이들에게 방향을 잡아주듯이, 엄마는 인생이라는 항로에서 길을 잃지 않게 자식을 이끌어주는 나침반이다. 이런 엄마가 병이 악화되어 입원하러 갈 때 아들은 처음으로 엄마의 손을 잡고 엄마를 이끈다.

영화 속 엄마 이름이 기억이 안 나 등장인물 소개를 보니 그저 엄마로만 나와 있다. 나도 대본을 쓸 때 엄마 역에는 따로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잠깐 나오는 조연들마저도 이름을 갖는데 엄마는 그냥 엄마다. 얼마 전, 엄마의 휴대전화 통화 내역을 봤더니 낯선 이름들 천지였다. “엄마, 이 사람은 누구야?” “얘가! 미희 엄마잖아.” “이 남자는 누군데 매일 통화해?” “어이구! 방송국집 아줌마잖아. 넷째 딸이라 남동생 낳으려고 그렇게 지었대.” “이 이름 너무 웃겨, 누구야?” “안양 고모할머니도 몰라?” 그러고 보니 우리 엄마도 남들에게는 누구의 엄마나 동네 이름으로 불리겠구나. 아무도 우리 엄마의 본명을 모를 거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경로당에 가면 이름을 불러준다고 행복해한다.

나는 내 이름이 정말 싫다. 초등학교 가는 길엔 정향 다방이 있었고, 고등학교 근처엔 정향 술집이 있어서 항상 놀림을 당했다. 게다가 이름에서 풍기는 과한 여성스러움을 감당할 재간이 내겐 없다. 내 눈엔 엄마 이름도 어디 내세우기엔 살짝 망설일 수준인데 정작 엄마는 안 그런가 보다. 경로당에서 최고령자인 덕에 ‘휘춘 언니’로 불린다며 여든이 넘은 노모가 눈을 반짝인다. 60년 동안 엄마 이름은 그냥 엄마였기에. 어찌 보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들은 따로 이름을 갖지 않는다. 공기, 물, 하늘은 어디서나 그렇게만 불린다. 우리들의 엄마처럼.

이정향 영화감독
#오다기리 조#도쿄 타워#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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