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영]따로 사는 노인

이진영 논설위원 입력 2021-06-08 03:00수정 2021-06-08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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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밀라논나’(밀라노 할머니)를 운영하는 장명숙 씨(69)는 2030세대가 열광하는 멋쟁이 할머니다. 이탈리아 밀라노로 유학을 다녀와 패션 바이어로 활동했던 경력을 살려 패션과 인생 상담을 해주는 채널인데 구독자가 81만 명이 넘는다. 미혼인 아들 둘이 있는 그는 “며느리가 생긴다면 어떻게 관계 설정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며느리는 손님, 내 아들과 같이 사는 여자죠.”

▷40년 넘게 유럽을 오가며 ‘왜 유럽엔 없는 고부 갈등이 우리에겐 있지?’ 자문하다 내린 결론이란다. 밀라논나처럼 ‘힙’하지 않아도 요즘 노인들은 자녀와 함께 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가 65세 이상 1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자녀와 동거를 원하는 비율이 2008년 32.5%에서 지난해엔 12.8%로 줄었다. 노인 단독 가구(부부 또는 1인 노인 가구) 비율도 같은 기간 66.8%에서 78.2%로 늘었다. 개인소득이 연간 1558만 원으로 증가한 데다 건강에 대한 자신감이 생겨 노인들의 ‘독립심’이 높아졌다고 한다.

▷자녀와 독립해 사는 쪽이 삶의 만족도도 높다. 2018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노인 부부만 따로 살 경우 만족도가 가장 높고 △노인 부부와 자녀가 함께 사는 가구 △배우자 없이 자녀와 사는 노인 △홀몸노인 순으로 만족도가 떨어졌다. 특이한 점은 남성 노인은 1인 가구로 살 때, 여성은 배우자 없이 자녀와 살 때 만족도가 가장 낮다는 사실. 남성은 혼자 사는 삶에 취약하고, 여성은 남성보다 경제력이 떨어져 자식에게 의존하는 것에 더욱 미안함을 느끼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복지부 조사에서는 자녀와의 왕래는 줄어든 반면 친구나 이웃과의 교류는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년의 사회적 관계망이 가족에서 벗어나 다각화하고 있다는 뜻인데 사회적 관계망이 두꺼워야 행복해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집안일을 부탁하거나, 많은 돈을 빌리거나, 이야기 상대가 될 사람이 3명 이상인 노인은 한 명도 없는 노인보다 행복도가 18.2∼22.1%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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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 경우 생애주기별 삶의 만족도는 나이가 들수록 떨어져 중년에 바닥을 찍은 뒤 올라가는 ‘U’자형을 그린다. 하지만 한국 노인들의 행복도는 확실한 U자형으로 반등하지 못한다. 노인 빈곤율이 43.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4.8%)의 3배로 높은 것이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노인 인구 비중이 2025년이면 20%가 된다. 모든 늙어가는 부모들의 바람대로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년을 위한 경제적 사회적 안전망을 튼튼히 짜야겠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노인#밀라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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