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자의 ‘사談진談’]‘그들’의 출근백태

장승윤 사진부 차장 입력 2021-06-02 03:00수정 2021-06-02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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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올해 4월 차량에 탄 채 출근하고 있다. 운전사가 손으로 룸미러를 잡아서 얼굴을 볼 수 없다. 반복되는 행동에 사진기자들은 옆창으로 보이는 지검장 얼굴을 찍기 시작했다. 뉴시스
출근길이 갈수록 고달파지고 있다. 지옥철 이야기가 아니다. 이번 정부 들어 법조계 인물들의 출근길 취재가 유독 많았는데, 이들을 찍어야 하는 사진기자의 이야기다. 현장에서 느낀 종잡을 수 없었던 이들의 출근 모습을 유형별로 정리했다.

○ 술래잡기형

장승윤 사진부 차장
정문과 후문을 오가며 오락가락 출근을 거듭하다 양쪽에 취재진이 진을 치자 100m가량 떨어진 과천청사 지하 아케이드를 통해 출근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전형적인 ‘술래잡기형’이었다. 어디로 올지 몰라 집으로 찾아간 한 매체 기자를 장관 측에서 먼저 발견했다. 술래를 바꾸고 싶었는지 기자의 모습을 휴대전화로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기도 했다. 추 전 장관은 청사 출근을 하지 않는 날도 있었다. 대변인은 ‘개인적인 용무’라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체인지업(빠르거나 느린 출근), 직구(정문), 변화구(후문), 마구(아케이드)까지 구종도 다양하다. 이 정도 팔색조 구종을 보유한 투수라면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바로 영입 제안이 올 것이다. 타자들의 혼을 쏙 빼놓으니 말이다.

○ 기자회견형


바통을 이어받은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출근은 전임자와 180도 다른 ‘기자회견형’ 모드다. 차를 현관에서 멀찌감치 세우고 걸어오며 기자들 질문에도 일일이 대답한다. 현장에서는 ‘친절한 범계 씨’로 불린다. 전임자와 다른 모습을 보이려는 의도 같으나 정확히 그 속을 알 순 없다. 사실 박 장관의 출근은 지극히 평범한데, 전임자의 갈지자 출근이 취재의 일상이 되어선지 낯설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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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락가락형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은 처음에는 ‘기자회견형’이었다. 하지만 취재진의 질문에 몇 차례 말실수를 한 데다, 서울중앙지검 황제 조사가 들통나자 ‘기자회피형’으로 돌변했다. 이때부터 후문 출근을 시작했다. 공수처 후문은 접근이 불가능해 멀찍이서 뒷모습밖에 볼 수 없다. 사진도 무언가를 피해 몰래 들어가는 모습만 생산됐다. 그래서인지 다시 정문 출근을 하겠다고 기자들에게 알렸다. 단, 질문은 받지 않겠다는 말도 첨부했다. 그러더니 또다시 뒷문 출근하며 ‘오락가락형’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 자승자박형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차를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직행한다. 모습을 담으려면 ‘창치기’ 기술이 필요하다. 움직이는 차량의 선팅 유리를 뚫고 블랙박스를 피해 뒷좌석에 앉아있는 마스크 쓴 인물의 눈동자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극강’의 사진술이다. 사진기자들은 지난 2년 동안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출근 취재를 통해 ‘창치기’ 기술을 연마했기에 이 지검장 모습을 쉽게 낚아챘다. 하지만 새로운 난관에 봉착했다. 운전사가 오른손으로 차량 룸미러를 만지며 차량 진입을 한 것이다. 지검장 얼굴은 오른손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반복되는 룸미러 경호에 의도성이 있다고 판단한 기자들은 정면 사진을 포기하고 ‘옆 창치기’로 전환했다. 그 덕에 차량 정면보다 옆 창문을 통해 찍는 게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를 앞둔 어느 날, 이 지검장은 헌정 사상 첫 ‘피고인 중앙지검장’이 될 위기의 시점에 느닷없이 1층 출근을 감행했다. 예고에 없던 일이라 소수의 기자들만 묵묵히 들어가는 지검장의 모습을 찍었다. ‘기소 앞둔 이성윤, 갑자기 정문 출근한 의도는?’ 이런 제목을 단 기사가 대거 양산되었다.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다는 ‘자승자박’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출근이다.

○ 원천차단형


인사청문회를 앞둔 후보자는 출근길에 취재진의 질문을 받는 것이 관행이었다. 하지만 김오수 검찰총장은 그런 관행을 깨고 ‘원천차단형’을 선택했다. 처음 출근은 1층이었지만 이내 지하행을 선택했다. ‘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서울고검에 있지만 원래 사무실도 아니기에 지하로 출근하는 게 도리’라는 대변인의 답변은 군색하게 느껴졌다. 그 논리라면 검찰총장에 취임했으니 이제부터는 한 나라의 검찰총장답게 지하가 아닌 1층으로 당당하게 사무실로 출근하길 바랄 뿐이다.

천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 마음을 찍어내는 카메라가 없으니 이들의 속을 알 순 없지만 이번 정권의 고위직 인사들은 자기 입맛에 맞을 때만 선택적으로 미디어를 이용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입맛에 맞는 반찬이 별로 없는지 최근에도 고위 인사들의 종잡을 수 없는 출근길 행보가 계속되고 있다. 덩달아 사진기자들의 출근길도 고달프기만 하다.

장승윤 사진부 차장 tomato99@donga.com



#법조계 인물#출근길#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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