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락바스락, 쿰쿰[내가 만난 名문장]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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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미 포포포매거진 대표
정유미 포포포매거진 대표
“세상에 있는 책의 수는 무한하다…. 마치 우리가 바깥 거리에서, 스치는 단어 하나를 포착하며 그 문장으로 인생을 직조할 수 있기를 기대하듯이.”

―버지니아 울프 ‘거리의 기억: 런던 탐험’ 중

기억하지 못하는 이전 생에 나는 유서 깊은 도서관을 불태웠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계속 책을 만드는 것이 이번 생의 업보일지도. 출판시장의 3% 정도를 차지하는 잡지, 그중에서도 엄마의 잠재력을 주목하는 독립잡지라는 마이크로미터 영역에서 분투하면서도 의식이 깨어 있는 모든 순간 다음 주제, 다음 기사를 고민한다.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끝도 없이 늘어져 있는 책을 보면 머리가 새하얘진다. 비틀거리며 책을 더듬어 갈 때도 있다. 특히 바스락거리며 떨어지는 빛바랜 종이와 세월이 묻어나는 쿰쿰한 냄새를 간직한 오래된 서점에서 길을 헤매는 걸 좋아한다. 책장 유리 너머로 보이는 고서의 가격에 좌절하다 마구 쌓아놓은 책 더미 속에서 좋아하는 작가의 초판본을 발견하면 로또라도 당첨된 기분이다.

디지털의 시대, 종이책은 위태롭다. 그럼에도 종이책은 영원할 것이라 믿는다. 아마존에서 킨들이 등장했을 때, 더 향상된 디바이스가 출시되었을 때도 종이책은 건재했다. 어느 유튜버가 책 출간을 위해 온라인 활동을 중단하겠노라 선언했을 때 생각했다.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로 신화를 써 내려간 그에게 종이책은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우리에게 책이란 어떤 존재일까. 계속 묻고 또 그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다.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뿌리가 들썩거릴 만큼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시대. ‘영끌’ 주식 투자를 해도 모자랄 시간에 나는 여전히 자간 하나 오탈자 하나에 집착한다. 열심히 사는 게 촌스럽다고 여겨지는 시대에 여전히 혼을 불살라 책을 만든다. 아직 세상에 발굴되지 않은 이야기들은 끝없이 쌓여 있고 나는 이번 생의 소명에 충실하고 싶다.

정유미 포포포매거진 대표



#서점#도서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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