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간 이를 되돌린다는 것[오늘과 내일/김희균]

김희균 문화부장 입력 2021-01-15 03:00수정 2021-01-15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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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도 살려내는 과학기술 속도
공론화·제도 정비 따라붙어야
김희균 문화부장
사랑하는 남녀가 있다. 교통사고가 남자를 앗아간다. 슬픔에 빠진 여자를 위해 같은 아픔을 가진 친구가 한 서비스에 등록시킨다. 서비스 업체는 죽은 이가 디지털 세상에 남긴 흔적들로 그의 말투를 고스란히 살려 마치 그인 양 채팅을 해준다.

한 번 망자를 느낀 이상 남겨진 자는 멈추기 어렵다. 이메일, 동영상 등 사적 기록들을 더 넘기니 이제는 통화까지 할 수 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리움이 커지는, 산 자의 최종 선택은 죽은 자를 되돌리는 것. 업체가 보낸 인형은 연인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 움직인다. 그인 듯 그가 아닌, 사람인 듯 사람이 아닌 ‘무언가’와 함께하는 삶은 해피엔딩일까. 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 시즌2 중 ‘Be Right Back(돌아올게)’의 전반부 이야기다.

이 드라마가 나온 2013년만 해도 공상과학처럼 여겨졌던 일들이 이제는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2019년 마지막 날 열린 일본 NHK 연말 음악방송 홍백가합전(紅白歌合戰). 어두운 무대 중앙에 하얀 드레스를 입은 중년 여성이 등장했다. 30년 전 세상을 떠난 일본의 국민 가수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 최신 기술로 구현된 그는 옛 노래가 아닌 신곡을 불렀다. NHK와 야마하, ‘미소라 히바리 프로덕션’ 등이 1년 이상 그의 육성을 데이터화하고 이를 인공지능(AI)에 학습시킨 결과물이었다. 애잔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객석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최근 우리 방송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SBS는 1996년 고인이 된 김광석의 목소리를 AI로 복원해 후배 가수의 노래를 부르는 프로그램을 예고하고 있다. 엠넷은 지난해 12월 AI 음악 프로젝트 ‘다시 한번’을 방송했다. 2008년 사망한 그룹 ‘거북이’의 리더 터틀맨이 홀로그램으로 멤버들과 한 무대에서 노래를 했고, 1990년 숨진 김현식은 하모니카를 불며 그만의 독특한 창법을 쏟아냈다. 형언할 수 없는 표정으로 지켜보는 유족들, 두 손을 모으고 눈물을 터뜨리는 관객들은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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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사이 AI가 엄청난 속도로 발달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감동을 순수한 감동으로 남기기 위한 고민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당장 AI를 통해 탄생한 노래의 주인공은 과연 목소리를 준 가수인지, 음성을 복원해낸 기계인지, 프로젝트를 꾸린 기획자인지 명확히 가르기 어렵다. ‘다시 한번’처럼 고인을 추모하는 일회성 프로젝트로 음원 발매 등을 안 하는 경우라면 모를까, 되살린 고인들을 상업적 용도로 활용하기 시작한다면 무수한 분쟁이 뒤따를 것이다.

‘과연 고인은 이렇게 되살아나기를 원했을까’라는 원초적 물음부터 산 자의 그리움을 채우기 위해 죽은 자를 불러오는 게 적절한가에 대한 윤리적 고민에 이르기까지 공론화가 필요한 부분도 많다. 미소라 히바리가 등장했을 때도 일본에서는 찬사도 많았지만 고인에 대한 모욕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고인을 되살리기 위해 필요한 음성, 동작, 춤, 말투 등을 활용하기 위한 동의는 누구로부터 어떻게 받을 것인가, 상업적으로 활용해 발생한 수익은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같은 법적 난제도 수두룩하다. 개인이 연명치료 거부 의사를 미리 밝혀두는 것처럼 이제는 ‘사후 소환’ 거부 의사도 미리 밝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지도 논의의 대상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는 속도만큼 전후사방에 놓인 문제들을 고민하고 제도화하는 속도도 따라붙어야 한다. 서두르지 않으면 감동 대신 새드엔딩만 남을 수 있다.

김희균 문화부장 foryou@donga.com



#망자#과학기술#공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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