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필리버스터 존중한다는 약속 사흘 만에 내팽개친 與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4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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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단독으로 본회의에 상정한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어제 중단됐다. 민주당이 표결에서 범여권 의원들을 끌어들여 필리버스터 종결에 필요한 의결정족수 180명 이상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여당이 10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처리 직후 “야당 의견을 존중하겠다”며 필리버스터를 보장한 지 사흘 만에 그 약속을 뒤집어버린 것이다.

여당은 필리버스터를 강제 종결하는 명분으로 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을 들었지만 군색한 변명으로 보인다. 여당이 지난주 공수처법을 일방 처리하는 등 입법 폭주에 나섰을 때도 코로나 확진자 수가 위험 수위에 달했지만 아무 말이 없다가 이제 와서 야당이 주도하는 필리버스터만 코로나와 결부시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국정원법 개정안에 대한 야당의 필리버스터는 처음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11일 국민의힘 소속 초선 의원 58명 전원이 참여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그 양상이 바뀌었다. 여당이 사흘 만에 필리버스터 존중 약속을 번복한 것은 그 파장을 최소화해 보려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원래 필리버스터는 국회에서 소수 야당의 의견 개진을 최대한 허용하는 합법적 의사방해 전술이다. 여당이 다수 의석을 앞세워 법안 처리를 하더라도 야당의 대국민 호소 공간을 열어주자는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다. 지금 여당도 야당 시절인 2016년에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를 만 8일간 이어간 적이 있다. 수적 우위만 앞세워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거나 정치적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하는 것은 책임 있는 집권 여당의 태도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필리버스터#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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