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블루[오늘과 내일/김광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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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환자 줄었는데 정신과만 크게 늘어
‘아파트 빵’ 같은 발언으로 분노 더 키워

김광현 논설위원
김광현 논설위원
최근 발표된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올 4∼7월 정형외과나 재활의학과에서 물리치료를 받은 환자 수가 작년에 비해 10%나 줄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집 밖 활동이 줄어든 때문이다. 이 밖에도 많은 진료과목에서 환자가 줄었는데 독감은 98%, 폐렴은 60%까지 감소했다. 반면 유독 크게 증가한 진료과목이 있는데 정신질환이다. 작년에 비해 7% 늘었다. 특히 19∼44세 젊은 여성의 우울증 환자는 21%나 늘었다. ‘코로나 블루’만 갖고는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 전월세와 무관하지 않은 ‘하우스 블루’ 현상이다.

수치를 직접 확인할 일이 있었다. 지난주 동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만났더니 자기 병원에도 작년보다 환자가 많이 늘었는데 상당수가 집값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를 호소한다고 했다. 그 의사는 “정부가 국민을 참 불편하게 만드는 것 같다”고 하면서 목동 살인 사건을 사례로 들었다. 지난달 서울 목동 아파트에 전세를 살던 부부가 아파트 구매를 위한 자금 마련 방안을 두고 다투다가 남편이 아내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본인도 투신해 사망한 사건이다.

가장 최근 통계인 한국감정원의 11월 전국주택가격동향을 보더라도 전국 아파트의 매매, 전세, 월세가 모두 크게 올랐다. 새 임대차법이 시행된 지 넉 달이 지났는데 전셋값에 이어 월세까지 올랐다. 월세 상승률은 2015년 7월 통계 작성 이래 최대다. 여기에 크게 오른 종부세 납부고지서가 발송됐다. 로또아파트 당첨자 일부를 빼고는 무주택자, 1주택자, 다주택자 등 거의 모든 국민의 주택 분노 게이지가 치솟는 중이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며칠 전 국회 해당 상임위에서 “아파트가 빵이라면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고 했다. 여당의 미래주거추진단장은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리면 임대주택도 좋다는 발언으로 국민의 염장을 질렀다.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기에 전문가들은 누누이 수요자들이 원하는 곳에 원하는 주택 물량을 공급하지 않은 채 두더지 잡기 식 수요 억제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해왔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임대차법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니 참아 보라고 매번 말하기가 어려웠던지 지난달 정부가 내놓은 24번째 부동산대책이 고작 호텔방을 개조해 공공임대주택으로 내놓겠다는 황당한 발상이다.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는 1969년 쿠데타로 집권한 뒤 주거에 따른 빈부격차를 해결한다면서 특이한 제도를 도입했다. 우선 모든 주택을 국유화했다. 그 다음에는 사람이 없는 집에 들어가 자기 집이라고 선포하면 들어가 거주할 수 있는 일종의 선착순 제도를 도입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실제로 행해졌던 제도다.

호텔방을 개조한 공공임대주택으로 전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대책이나 황당하다는 차원에서는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코로나19가 끝나고 관광객이 늘어나면 세입자들을 몰아내고 다시 호텔로 개조하겠다는 뜻인지, 아니면 호텔은 빵처럼 공급할 수 있다는 말인지 세계 11위 경제대국의 정부 대책치고는 가히 ‘아무 말 대잔치’ 수준이다.

‘아파트 빵’ 발언이나 호텔방 전세대책 같은 무리수가 나오는 것은 애당초 방향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바둑에서도 포석에 실패하고 실착이 반복돼 형세가 비관적일 때 꼼수나 무리수가 등장하는 법이다. 또 대개는 그로 인해 만회할 수 없는 수준으로 판을 더 크게 망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과감하게 기존 착점의 실패를 인정하고 방향을 틀거나 아니면 돌을 던지는 것이 매너이고 다음 판 승리를 위한 길이다. 전 국민을 우울증 환자로 만드는 지금의 주택정책도 마찬가지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하우스 블루#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아파트 빵 발언#임대차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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