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하튼’이라는 말에 숨은 비밀[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입력 2020-09-16 03:00수정 2020-09-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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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정신분석은 언어를 쓰는 치료입니다. 피분석자의 잃어버린 과거를 찾아 기억을 보완해 치유하려 했던 프로이트의 ‘고고학적 발굴’ 접근방법에서 벗어나 현재의 이야기에 중점을 두게 되었지만 여전히 말로 이루어집니다. 개인사적 진실보다 서술적 진실이, 기법으로도 ‘그 장소, 그때’보다는 ‘이곳, 지금’의 해석이 강조됩니다.

치유를 원하는 사람이지만 진실을 쉽게 이야기할까요? 그렇다면 분석가의 마음은 편안함과 평화, 그 자체일 겁니다. 솔직한 성격의 사람도 무의식의 영향을 피하지 못하고, 마음을 가리고 숨기는 일은 인지상정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피분석자 마음이 작동시키는 방어의 흐름을 찾아내서 분석해야 합니다.

피분석자가 이야기를 하던 중에 갑자기 다른 이야기로 넘어간다면 마음이 불편해서입니다. 흔히 쓰며 넘어가는 말은 ‘어쨌든’ ‘여하튼’ ‘그건 그렇다 하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역시’는 이야기 뒤집기 목적으로 사용됩니다. 접속사에 관심을 가지면 마음의 방향이 보입니다.

막연한 언급도 한몫을 합니다. 부부 사이를 묻는 질문에 “어느 집이나 다 그렇죠”라고 답한다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자세히 물으면 두 사람 사이에 놀랄 만한 일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사는 게 다 그렇지요”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삶을 노출시키고 싶지 않은 방어책입니다. “다 그런 거야”는 이야기의 진행을 막고 마음이 드러나는 것을 차단하려고 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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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보다는 주로 대명사를 쓴다면 역시 숨기기입니다. 대명사만 열거하면 듣는 사람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행위의 주체, 객체 언급 없이 “그가 그런 짓을 해서 힘들었어요”라는 식으로 일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관계나 경험의 고통이 떠오르는 일을 막은 겁니다.

미묘한 사적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개인, 집단의 일상에서도 관찰됩니다. 사적 언어는 개인, 집단을 외부로부터 보호하려고 생겨납니다. 특성은 다른 사람이 이해하기 힘들다는 겁니다. 연애, 결혼 관계인 사람들 간에 나누는 사적 언어에 같이 있는 사람이 따돌림을 당한 것같이 어색하게 느낀다면 당연합니다. 가족이 아닌 사람이 가족인 사람들 사이에서 느끼는 감정도 그렇습니다.

집단 중에서도 정치 집단의 사적 언어는 힘이 셉니다. ‘싸워서 이기자’는 최상위 목표하에 단결하거나 공모해서 만든 언어라서 그렇습니다. 애매한 언급, 암시, 기색, 태도, 의미심장한 한숨, 몸짓 모두 금방 통합니다. 위기에 몰린 구성원을 구해야만 한다면 적과의 싸움에 사적 언어를 적극 활용합니다. 외부인들이 듣기에는 터무니없어도 개의치 않습니다. 사적 언어의 ‘기관총’을 난사하는 일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정신분석 효과의 기반은 분석가, 피분석자 사이의 적절한 긴장 유지입니다. 긴장이 무너지면 분석은 정체됩니다. 긴장을 피하려고 피분석자와 분석가가 사적 언어를 활용해서 접속사 남용, 대명사 활용, 애매한 이야기 도입 등으로 마음을 감추려는 방어 행위를 공모한다면 진실은 외면되고 분석은 파경에 이릅니다. 진실은 불편함과 고통의 결과물입니다. 쉽고 달콤하게 보여서 ‘모르는 것이 약!’이라고 착각하면 덫에 걸려 허우적거립니다.

방어를 의식의 억압으로만 설명했던 프로이트의 시대에서, 다양한 방어기제를 발굴해 자아 심리학의 시대를 연 아나 프로이트의 시대로, 프로이트 사후 후학들이 방어의 개념을 확장해 이제는 방어의 역동성을 일상의 언어 행동에서도 풍부하게 찾아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어떤 방어적 태도가 삶에 대한 건강한 적응에 도움이 되느냐, 아니면 개인, 조직을 스스로 속이면서 퇴행과 붕괴로 이어질 것인가를 방어 방식의 존재적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여깁니다. 지키고자 하는 가치, 사람과 적정한 거리 두기를 하지 않으면 눈은 안 보이고 머리는 혼돈에 빠집니다. 너무 가까우면 나무만 보이지 숲은 안 보입니다. 사적 언어를 쓰는 방어는 너무나 교묘하고 미묘해서 자기 성찰을 한다고 해도 쉽게 바로잡히지 않습니다.

삶의 이야기 바구니에는 과거, 현재, 미래 모두 오직 한 가지가 아닌 여러 개의 ‘버전’이 담겨 있습니다. 확정된 것으로 착각하는 과거가 하나의 과거가 아니라는 사실부터 우선 받아들여야 합니다. 기억은 살아 움직이며 모습을 바꿉니다. 자신이 100% 옳다고, 옳아야만 한다고 확신하고 있다면 아집(我執)일 가능성이 큽니다. 같은 편이어서 그 사람이 반드시 옳고, 필연적으로 옳아야만 한다고 믿는다면 그 역시 여기저기 떠다니는 구름처럼 허무합니다. 사적 언어의 미묘함, ‘뚜렷하지 않고 야릇하고 묘하다’는 사전적 의미처럼 자신 마음의 미묘한 변화를 조금이라도 읽어낼 수 있다면 그만큼 성숙해졌다는 의미입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정신분석#언어#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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