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서프라이즈’[횡설수설/김영식]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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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직전,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깜짝 쇼’를 옥토버 서프라이즈라고 한다. 흔히 선거 전 서프라이즈라면 외교안보 관련 중대 발표가 제격이지만 올해는 코로나19 관련 이슈가 터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선거팀은 11월 3일 대선 전 코로나 백신 개발을 기대하며 이를 ‘성배(聖杯)’로 부른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 “(백신이) 아주 빠르게 보급될 것이며, 아주 큰 서프라이즈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선 직전 백신 개발로 선거에서 승기를 잡으려 한다는 관측이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늦어도 11월 초에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준비하라고 50개 주정부에 통보했다. 식품의약국(FDA)마저 백신의 3상 임상시험 전 긴급승인 의사를 나타내자 ‘백신 정치화’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트럼프가 대선용으로 코로나 백신 접종을 압박한 결과인 셈인데, 이가 나기도 전에 고기를 씹겠다는 발상이다.

▷‘백신 과속’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면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미 정치전문 매체 더힐이 유권자 249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21%는 백신이 나와도 접종받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먼저 접종을 받은 이들의 효과와 부작용을 지켜보겠다는 것.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은 “어떤 경우에도 백신의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되기 전엔 미국 국민에게 사용 승인을 하지 않겠다”며 “10월까지 백신을 가진다는 상상은 할 수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고 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은 지구촌이 한마음으로 고대하는 최대 관심사다. 하지만 환자용 치료제와 달리 건강한 일반 사람들에게 접종하는 백신은 안전성이 생명이다. 백신이 임상 3상 시험에 성공해도 최종 상용화 성공률이 10% 미만인 것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 때문이다. 실제로 9일 영국에서 백신 3상 시험 중 부작용이 나타나 시험이 잠정 중단되고 제약사 주가가 급락했다. 화이자 등 백신 개발 업체 9곳은 안전성 및 효과를 완전히 검증하기 전까지는 백신 승인 신청을 하지 않겠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마음은 바쁘지만 신호 위반은 않겠다’는 다짐이다.

▷백신 개발은 엄청난 이익과 명성을 보장하는 성배일 수 있지만, 치명적 부작용이 일부라도 나타난다면 재앙으로 이어지는 독배(毒杯)가 될 수 있다.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백신 접종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등 전제적 스타일의 스트롱맨들이 시도하고 있는 일인데, 민주주의 모범국인 미국이 이런 독재적 발상을 따라 한다면 국민이 용납할지 주목된다.

김영식 논설위원 spear@donga.com
#옥토버 서프라이즈#2020 미국 대선#코로나19#코로나 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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