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북한이 그때 북한인 줄 아나?[오늘과 내일/신석호]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입력 2020-07-31 03:00수정 2020-07-31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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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라인의 그때 그 사람들
재야 통일운동과 햇볕정책 먹히던 그때 북한은 지금의 북한이 아니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2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그의 대북인식과 정책방향을 시사하는 대화가 오갔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이면합의서를 공개하기 전 “국정원장의 임무 중에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라는 임무가 있느냐? 국정원법 어느 조항에 그런 것이 있느냐”고 따졌다. 박 원장이 “대통령님께서 제게 과분한 소임을 맡기신 뜻은 경색된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라는 국민의 열망을 반영하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히자 간첩도 잡고 대북 정찰도 해야 할 국정원장이 대화에만 매달리면 되느냐는 정당한 추궁이었다.

조태용 통합당 의원이 “과거에 대북 불법 송금이라는 방법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주역이다 하는 이미지가 따라다닌다”고 하자 박 원장은 “반세기 만에 남북대화를 성사시킨 주역이라 이렇게도 좋게 생각한다”고 받아쳤다. 이어진 주 원내대표와의 대화에서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해서 북한은 처음부터 우리가 무슨 박테리아냐, 햇볕 비춰서 다 죽인다는 소리냐 이런 오해가 있었는데, 6·15남북정상회담 이후 이러한 것들이 많이 불식되어서…”라고 장황하게 홍보했다. 현대그룹의 5억 달러로 만든 20년 전 정상회담의 영광을 잊지 못하는 듯했다.

남북대화의 주무장관인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더 노골적으로 과거를 소환했다. 23일 청문회 모두발언에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남북관계 발전과 북핵 문제 해결을 연계시키지 않고 병행함으로써 국제사회를 설득하고 북한의 협조를 이끌어 낸 경험에 주목해야 한다. 병행진전의 출발점은 남북관계의 복원”이라고 강조했다. 장관 지명 직후 “평화로 가는 오작교를 다 만들 수는 없어도 노둣돌 하나는 착실하게 놓겠다”며 자신의 대북 인식이 박 원장보다 더 오래된 것임을 드러냈다. 남과 북을 헤어진 남녀로 치환해 무조건 만나야 한다고 노래했던 1980년대 민중가요 ‘직녀에게’를 읊은 것이다.


그래, 그들에게 좋은 시절이 있었다. 전두환 노태우 군부 권위주의를 타도하기 위해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를 외쳤던 아래로부터의 통일운동이 대중의 지지를 받던 시기가 있었다. 비민주적 국가에 저항을 결집하는 정치적 도구로서 민족담론이 먹혔던 것이다. 신격화된 북한 독재자 개인의 인식을 바꿔 남북대결의 구조를 바꾸겠다는 김대중식 햇볕정책은 그것을 역이용해 ‘고난의 행군’ 경제난을 벗어나 보겠다는 김정일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졌다. 경제적 이익을 노린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이 판돈을 내고 정치적 이익은 남북의 최고지도자가 보는 거짓 평화가 진짜처럼 보였던 시절이 있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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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어쩌랴, 가버린 시절인 것을. 1980년대 거리에서 남한의 대학생들이 외쳤던 ‘민족’이 순수한 민족주의의 발로였다고 치더라도 노동당 통일전선부를 통해 집요하게 개입했던 북한의 속셈은 오로지 ‘김일성 민족국가’의 영속과 확장이었음을 이제는 모두가 다 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남북대화는 햇볕정책이 먹혀서가 아니라 남한과 샅바를 잡다가 잘못되더라도 내부 동요를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권력을 장악했다고 확신한 말년의 김정일이 상대방이었기에 가능했던 ‘예외적 시기’였다.

특히 노무현 정부가 끝난 2008년부터 미중 패권경쟁이 시작되면서 핵보유국 지위를 향해 내달린 북한은 이제 스스로를 미국과 경쟁하는 강대국인 양 행동하고 있다. 핵을 가진 3대 세습 독재자 김정은은 핵이 없는 약소국 남한을 더 이상 민족공조의 파트너로, 경제 지원의 은인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김씨 독재자들이 측근을 대하듯 복종만을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아직 좋았던 과거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북한은 더 이상 그때 그 나라가 아니라는 말이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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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운동#북한#햇볕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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