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일 항해 동안 벌어진 일[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33〉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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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1983년 5월, 달콤한 첫 휴가를 마친 나는 A선박에 승선했다. 대만 가오슝에서 철재를 싣고 노르웨이의 나르비크항으로 가라는 항해 지시를 받았다. 북유럽 항구를 구경한다는 소식에 선원들은 흥분됐다.

그렇지만 도착하기까지 40여 일의 항해가 필요했다. 한국에서 미국 서안으로 가는 항해는 15일이면 된다. 40일의 항해는 길다. A선박이 너무 커 수에즈 운하를 바로 통과하지 못하고 희망봉을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대만에서 서쪽을 향해 항해하다가 약간 남으로 내려가 희망봉을 돌아서 북으로 항해하면 스페인의 테네리페섬이 나온다. 섬에서 다시 북으로 향하면 영불해협이며 북쪽으로 올라가 90도로 가면 나르비크가 나온다.

항해사인 나는 당직을 선교에서 서야 했다. 인도양을 건널 때에는 그야말로 ‘망망대해’, 배 한 척 보이지 않았다. 알데바란 등 남반구의 밝은 별자리 이름을 익혔다.

당직을 마치고 나면 70mm 환등기를 틀어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배에서는 환등기로 영화를 봤다. 오락담당인 3등 항해사가 “오늘 몇 시에 어느 방에서 영화 상영을 한다”고 알린다. 상영시간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였다. 우리 당직자들은 밤 12시 당직을 마치고 따로 방에 모여 영화를 봤다. 선박에는 탁구시설이 마련되어 있어 단·복식 게임을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땀을 많이 흘리고 샤워를 한 다음 맥주 한 잔을 마시면 참 기분이 좋았다. 나도 항해 중에는 하루에 2시간 정도 탁구를 쳤다. 오후에는 단파방송을 구입해 VOA 방송의 주파수를 맞춰 영어 방송을 듣고 이해하려고 했다.

한편 장거리 항해는 선원들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본디 육지에서 땅을 밟고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배에 갇혀 오랫동안 지내다 보니 항해가 길어질수록 조금씩 예민해졌다. 소소한 일에 시비가 붙기도 했다.

이런 경우 선장은 윷놀이 등 단체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해주었다. 한번은 적도제를 지낼 때 선원들이 한 잔씩 음주를 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술에 취한 오일러가 기관장의 멱살을 잡는 일도 벌어졌다. 나로서는 생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하극상이었다. 분위기를 보아 사고가 날 여지가 있으면 금주령을 내려야 한다. “오늘부터 입항 때까지는 절대 술을 팔지 못한다”고 명령을 내리고 규율부장인 1등 항해사가 강력하게 집행하면서 아예 사고의 소지를 없애야 한다.

결국 40일 걸려 우리는 나르비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백야(白夜)를 경험했다. 오후 11시인데도 대낮처럼 훤했다. 흰색 담장과 주홍색 지붕을 가진 아담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 아름다운 풍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나르비크까지의 항해는 나에게 최장의 항해로 기록됐다. 그 기간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었다. 이 모두가 나에게는 젊은 날 남들이 체험하지 못하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선원들이 육지를 밟지 못한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항구에 입항한 선박에 가족을 승선시켜 주는 등 선원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요구된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항해사#나르비크#백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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