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기업 활동 보장… 국제사회와 거꾸로 가는 남북관계 조급증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2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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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교류협력법을 개정하면서 북한 기업의 한국 시장 내 경제활동을 보장하고 영리활동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기로 했다. 북한 기업이 한국에 올 때를 대비한 근거조항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통일부의 설명이다. 정부가 5·24제재 조치의 ‘실효성 상실’을 천명한 데 이어 북한에 시장 개방 의사까지 드러낸 것이다.

교류협력법 개정안 초안에는 남북 주민이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상대 지역에서 이윤 추구 활동을 벌일 근거 등이 담겨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기존 경제협력규정을 상향 입법한 것”이라며 “대북제재를 포함해 해결돼야 할 과제가 많다”고 말했다. 북한과의 합작을 금지한 유엔 대북제재에 어긋나기 때문에 당장 실현 가능성보다는 미래를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실현된다면 남북 공동 투자를 통한 이윤 분배는 물론이고 북한 기업이 우리 주식시장 등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북한에선 사기업이 인정되지 않는다. 신흥자본가인 ‘돈주’들이 국영기업과 연관된 사업을 벌이는 것이 일부 허용된다지만 이를 사기업이라고 할 수 없다. 결국 김정은 정권이 모든 이익과 외화를 챙겨갈 뿐이다.

미국 법무부는 얼마 전 3조 원 규모의 돈세탁 등에 관여한 북한 조선무역은행 관련 인사와 중국인 등 33명을 무더기로 기소했다. 비핵화 협상을 외면하며 핵개발을 지속하는 북한에 강력한 경고를 보내고, 중국에도 대북제재를 이행하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뒤집어 보면 대북제재 전선에서 이탈했다간 우리 기업이나 은행들도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 대화만 바라보지 말고 남북 간에도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해 나가야 한다”고 밝힌 뒤 국제 정세는 고려하지 않은 무모한 후속 조치와 언급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남북 교류 속도전에만 집착하다간 비핵화와 보조를 맞추길 원하는 미국과 엇박자를 낼 수밖에 없다. 대놓고 국제법을 어기겠다는 메시지로 오해받기 쉬운 조급한 행보는 우리 스스로 대북제재의 구멍이 되겠다고 자처하는 꼴임을 유념해야 한다.
#교류협력법 개정#남북관계#북한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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