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G 독점 논란[횡설수설/박중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외에 주택 보증 기관을 추가해 경쟁시켜야 한다.” 건설업체와 재건축 조합들 사이에서 최근 이런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주택법이 30채 이상 주택을 선(先)분양할 때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보증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보증을 내주는 기관은 HUG 한 곳뿐이기 때문이다.

▷주택도시기금법에 따라 설립된 HUG는 주택 분양, 임대보증금, 전세보증금 등의 보증 업무를 도맡는 공기업이다. HUG 독점 문제가 최근 도드라진 건 여러 재건축·재개발 사업들이 HUG와 마찰을 빚으면서다. HUG는 ‘보증 리스크 관리’라는 이유로 서울, 경기 과천시 등을 고분양가 관리지역으로 지정해 보증 전에 분양가를 심사하고 있다. 높은 분양가로 주변 아파트 값을 자극하지 못하게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있는 셈이다.

▷HUG가 보증을 서주지 않으면 사업 진행이 불가능해진다. 서울 둔촌주공아파트 조합은 1만2000가구의 대단지 재건축을 추진하면서 HUG와 분양가에 대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 사업이 지체되고 있다. 수수료 수입으로 지난해에만 4850억 원의 영업이익을 챙기면서도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상전 노릇’을 한다는 게 건설업체와 재건축 조합들의 불만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HUG 요구에 맞춰 분양가를 낮춘 아파트는 당첨만 되면 수억 원대 차익을 올릴 수 있는 ‘로또 청약’이 된다.

▷주택 보증 시장에 경쟁 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은 2008년부터 제기됐다. 2017년에는 시장경쟁 촉진이 주 업무인 공정거래위원회가 “복수 주택 보증 기관 체제를 도입하라”고 국토교통부에 권고했고 그 시한이 올해까지다. 당시 국토부는 HUG 외에 ‘장관이 지정하는 보험회사’가 보증을 해줄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고쳤지만 아직까지 업체를 지정하지 않고 있다. 다른 보증업체가 들어와 HUG를 피할 길이 생기면 아파트 분양가를 잡을 강력한 수단이 약화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는 게 건설업계의 생각이다.

▷HUG로선 억울한 면이 있다. 정부 정책을 충실히 수행한다는 이유로 비판의 타깃이 되기 때문이다. 경쟁체제 도입으로 시장에 새로 들어오는 민간업체가 높은 수수료를 챙기려고 고가 아파트 분양에 집중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신용도가 낮은 중소 건설업체의 수수료가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는 ‘보증 독점’이란 수단으로 아파트 값을 언제까지나 억누를 수 없다는 건 정부나 HUG 관계자들도 잘 알고 있다. 정부와 여야는 21대 국회에서 시장의 문을 여는 쪽으로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주택도시보증공사#주택도시기금법#hug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