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이민사의 변곡점 될 코로나 위기[오늘과 내일/박용]

박용 뉴욕 특파원 입력 2020-05-16 03:00수정 2020-05-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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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1세대가 키운 한인 의사 맹활약
위기 속 美 한인사회에 희망 전해
박용 뉴욕 특파원
미국 뉴욕과 뉴저지주에서 일하는 한인 의사 앤드루 남 씨(34)는 9일(현지 시간) 아침 일찍 집을 나서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퀸스 플러싱의 H마트 앞으로 향했다. 전날 브루클린 병원 중환자실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를 돌보며 오후 9시까지 일했지만 토요일에도 마스크와 방호복을 벗을 순 없었다. 그가 속한 ‘코로나19 대응 한인의사협회연합’이 마련한 한인 대상 ‘무료 항체 검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남 씨는 이날 동료 한인 의사 10명, 의대에 재학 중인 한인 학생 10명과 한 팀이 돼 동포 278명의 혈액을 채취하고 항체 유무를 검사했다. 방호복을 벗을 수 없어 점심을 거르고 화장실도 가지 못한 채 6시간 넘게 일했지만 피곤한 줄 몰랐다. 휴식도 마다하고 동포들을 돕는 의대생 후배들의 열정이 영양제처럼 느껴졌다. 남 씨는 “코로나19 위기로 힘들어하는 부모님 같은 한인 동포들을 생각하면 주말에도 쉴 수 없었다”고 말했다.

남 씨는 14세 때 미국으로 이민을 온 이민 1.5세대. 그의 부모님은 네일숍과 생선가게를 하며 힘들게 그를 뉴욕의 의대까지 보냈다. 미 정부 통계에 따르면 한인 이민 1세대의 주류는 음식점, 건강관리, 교육, 세탁업 등에 종사했지만 2세대는 남 씨처럼 컨설턴트,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으로 많이 일한다.


남 씨는 병원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들을 돌보며 영어가 서툴러서, 의료보험이 없어서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하던 동포 어른들을 떠올렸다. 남 씨는 “2주 전 ‘장어덮밥을 사 주겠다’고 하셨던 친척 어른이 사흘 전 코로나19로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항체 검사 자원봉사도 그렇게 시작했다. 무료 항체 검사 진단기가 부족해 예약을 하지 못한 동포들을 검사장에서 돌려보내야 할 때가 가장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검사를 예약한 할머니가 갑자기 자신 대신 자녀를 검사받게 해달라고 했을 때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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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한인 사회는 이념, 지역, 이해관계에 따라 사분오열하며 대립해 후대를 실망시키는 일이 꽤 있었다. 일부 명망가는 한국 정치권에 주파수를 맞추며 ‘몸은 맨해튼, 마음은 여의도’라는 비판도 들었다. 이번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생명을 지키기 위해 똘똘 뭉친 한인 의사들은 달랐다.

의대생 단체까지 포함된 5개 한인 의사단체는 3월 태스크포스를 결성하고 동포 지원을 위한 핫라인 개설과 무료 항체 검사까지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이현지 뉴욕한인의사협회장은 “부모 세대에게서 받은 것을 돌려주고 후배 의대생들에게 본을 보여야 한다는 사명감이 우리를 뭉치게 했다”며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모습도 커다란 자부심을 느끼게 해줬다”고 말했다.

12일 미국 공영방송 PBS는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이민사를 다룬 특집 방송을 내보냈다.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도산 안창호 선생의 후손들부터 1992년 4월 29일 ‘로스앤젤레스 폭동’에서 다시 일어선 한인들의 눈물과 아픔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시구는 파란만장한 한인 이민사에도 잘 들어맞는다.

이번 코로나19 위기는 한인 이민사의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위기가 끝나면 한인 사회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 수 있다. 일부는 떠나고, 새로운 사람들이 빈자리를 채울 것이다. 한인 사회는 위기를 딛고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더 단단해질 것이다. 117년 미주 한인 이민사가 그랬던 것처럼. 코로나19의 최전선에서 ‘환난상휼’ 정신으로 맹활약하고 있는 한인 청년 의사들이 그런 희망을 보여준다.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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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한인사회#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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