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당, 망한 줄도 모르는 무감각이 더 무섭다[오늘과 내일/이승헌]

이승헌 정치부장 입력 2020-05-05 03:00수정 2020-05-05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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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멸절을 당했는데 도무지 절박함이 없어
총선서 41.45% 준 유권자에 미안하지도 않나
동아일보 DB
이승헌 정치부장
“너무 우울해서, 별로 할 말도 없고….”

오늘(5일)은 한국 보수 정치가 4·15총선에서 궤멸적 패배를 당한 지 20일째 되는 날이다. 알고 지내는 통합당 당직자들에게 얼마 전 전화를 했더니 이렇게 말하는데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하긴 요즘은 통합당 출입기자단의 얼굴빛도 그리 밝지 않다고 한다. 아무리 정치와 언론이 불가근불가원이래도, 매일 보던 사람들의 처지가 이러한데 세상 편한 웃음을 지을 수는 없는 게 사람 사는 이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합당 의원, 당선자들에게선 폭망의 위기감이나 앞으로 다가올 ‘퍼펙트 스톰’을 절절하게 느끼기 어렵다. 말로는 “큰일 났다”고 하고, 일부는 모여서 대책도 논의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행태는 이들에게 위기라는 개념이 있는지 의심케 한다. 누구는 이를 한국 사회의 주류로 오래 살아온 보수 정치의 자신감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가 총선 패배 후 20일간 관찰해 보니 이는 낙관주의나 대범함, 이런 게 아니라 정치적 무감각증이라고 보는 게 맞다. 무슨 철학이나 신념에서 나온 게 아니라 어디가 고장 난 것이다. 몸이 아프면 통각(痛覺)이 작동해야 치료를 받는데, 계속 “나는 안 아파” 하며 딴소리를 하고 있다.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그러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을 둘러싸고 찬반 세력이 뒤엉켜 아직까지 결론을 내지 못한 게 대표적이다. 역대 비대위는 그래도 출범은 빨리 했는데 지금은 4개월짜리냐, 1년짜리냐, 아니면 아예 안 된다를 놓고 이전투구다. 그렇다고 김종인 비대위를 놓고 무슨 끝장 토론을 한 것도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비대위 동력이 쭉 빠질 수밖에 없는데 “왜 김종인이 필요한가”라는 주장도 속 시원하게 들어 보지 못했다. 심재철 원내대표가 김종인 내정자 집에서 와인 3잔 마시고 나온 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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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은 미래 권력이라는 희망이 있어야 존재한다는 것도 망각한 듯하다. 차기 대권을 꿈꾸거나 만들어낼 수 없다면 수권(受權) 가능성이 낮은 정치적 불임(不妊) 정당인 것이다. 때문에 이렇게 굴욕적 참패를 당한 정당이라면 가능성 있는 차기 대선 주자를 억지로라도 띄워 최소한의 정치적 구심점을 확보하려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총선 참패 후 통합당 안팎에서 나오는 차기 대선 담론은 절망적이다. 이미 평가가 끝난 전직 대선 후보들이 “이번엔 내 차례”라고 하고, 대선 후보를 만들어 보겠다는 김종인 내정자도 당 내 반응에 따라 오락가락이다.

어떤 이슈로 슈퍼 여당을 상대할지에 대한 인식이나 컨센서스도 없다. 대선의 시대정신은 차치하더라도, 보수의 시그니처 이슈인 대북 어젠다조차 벌써 휘청거리고 있다. 김정은 신변이상설 정국에서 온갖 주장이 나왔지만 지금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건 안보 인재라고 영입한 통합당 태영호, 미래한국당 지성호 당선자의 김정은 위독설과 사망설뿐이다. 한 보수 진영 인사는 “대북 이슈는 21대 국회에서 여권을 상대할 몇 안 되는 무기인데…”라며 한숨을 쉬었다.

통합당은 총선 내내 정치적 감수성 부족으로 애를 먹었다. 이게 대치동 학원에서 하루아침에 배울 수 있는 건 아니다. 진보 진영은 학창 시절부터 갈고닦은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 자신들이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는 자각해야 혁신을 하든 과거와 단절을 하든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들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에게 어떻게 비칠지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면 이럴 수는 없다. 이건 정치를 떠나 상식과 양심의 문제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미래 통합당#퍼펙트 스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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