섀클과 로프[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31〉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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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우리 집은 수산업을 했다. 이 업을 위해서는 선박과 선원, 그리고 그물이 필요했다. 그물을 이용하여 고기를 잡으려면 선박과 그물을 묶는 밧줄이 필요하고, 밧줄과 선박을 연결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선박 몸체와 그물의 끝단에 각각 동그란 모양의 구멍을 만든다. 그리고 타원형의 장치를 이 양 공간에 넣어 핀을 꽂으면 그물과 선박을 안전하게 연결할 수 있다.

동네 형들이 내가 귀여워 자꾸 나를 찾는 줄 알았다. 실은 그들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조부님 창고의 개구멍으로 들어가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타원형의 쇠붙이 몇 개를 들고 나왔다. 엿집에 가서 쇠붙이를 엿으로 바꿔 먹었다.

초등학교에도 입학하기 전, 여러 차례 이 짓을 했다. 조부님이 아시게 돼 우리들은 혼쭐이 났다. 해양대에 입학하고 난 뒤 그 당시 엿으로 바꿔 먹던 쇠붙이의 이름이 ‘섀클’이라는 것을, 또 법률상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라 하여 조부님의 물건을 훔친 손자는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로프도 섀클과 같이 선박과 무엇을 연결할 때 사용하는 밧줄이다. 선박과 그물을 연결할 때는 물론이고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때도 로프가 사용된다. 로프는 주먹 크기의 섀클과 달리 길이가 수십 m에 이르고 무겁고 밧줄에 힘이 잔뜩 걸리기 때문에 사용 시 매우 주의해야 한다.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로프가 가장 요긴하게 사용되는 것은 선박을 부두에 붙일 때다. 통상 로프는 선박의 앞부분과 뒷부분에 3줄씩 잡는다. 그러면 큰 선박이 부두에 꼼짝없이 붙어있게 된다. 한번은 선박이 부두에 접착했는데 로프 하나가 부두의 펜더(완충장치) 아래에 끼었다. 낀 로프를 감아 올려야 하는데 잘 보이지 않았다. 당시 1등 항해사였던 나는 뱃전 위로 올라가 로프를 감아 올리라는 신호를 주었다. 나는 펜더에서 로프가 풀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로프에 힘이 가해지고 틈새로 풀려 나올 순간 나는 ‘아차’ 싶었다. 내가 뒤로 뛰어내리려는 순간, 밧줄이 튀어 올라왔다. 나는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가슴을 만져 보았는데 통증이 없었다. 분명 튀어 오른 로프에 맞았는데….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턱도 이상이 없다. 일어나 보니 로프 흔적이 옷에 남아 있었다. 감는 힘이 강하게 걸린 로프가 내 배를 가볍게 스치고 지나갔고, 그 힘으로 뒤로 나가떨어지면서 정신을 잃었지만 아무런 외상이 없었다. 천우신조였다.

섀클과 로프는 선박 관련 각종 장비를 연결해 선박이 고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한다. 바다 사람들은 재미있고 교훈적인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다. 이런 소재들을 모아 바다문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 이야깃거리를 문화로 만들어 가는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나는 복 받은 바다 사람이다. 칼럼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독자들과 바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말이다. 본 칼럼은 나에게 섀클과 로프 같은 고마운 존재이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섀클#로프#선박#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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