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네덜란드는 큰 홍역을 치렀다. 튤립 인기가 치솟다 보니 알뿌리 한 개 가치가 집 한 채 가격과 맞먹는 거품이 만들어진 탓이다. 무슨 색 꽃으로 변할지 모르는 알뿌리를 그 값에 거래했다니 믿기 힘든 이야기다. 사회 전체가 튤립에 매달려 그걸 소유해야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는 풍토가 강하게 형성돼 있었다. 구성원 누구도 이 현상을 의심하지 않았고 당연하게 여겼으며 경쟁적으로 알뿌리에 매달렸다.
상식이 이런 광풍을 일순간에 잠재웠다고 한다. 천금 같은 이 알뿌리를 양파인 줄 알고 그냥 먹어버린 ‘대사건’이 발생했다. 알뿌리 주인은 거액을 내놓으라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알뿌리는 그저 알뿌리일 뿐”이라며 기각시켰다. 그제야 알뿌리에 취해 있던 온 나라가 알뿌리를 알뿌리로 취급하기 시작했고 거품은 순식간에 사라졌다고 전해진다. 여기저기서 파산 사태가 속출했다. 허깨비 같은 거품경제를 비판할 때 종종 등장하는 사례다.
허상을 좇느라 헛심 쓰고 많은 기회비용을 치르고 나서야 정신 차린다는 교훈을 보면 연상되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뇌에 구멍이 날 것처럼 선동하는 일이 오랫동안 정의와 진실로 포장됐던 사안부터 떠오른다. 대통령이 그렇게 부르짖던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선 도대체 무슨 일을 했는지 지금도 잘 모른다.
지금 온 나라를 관통하는 현 정부 제1 과제는 적폐청산이다. 정부부처마다 적폐를 찾아내고 적폐를 추진한 인사들을 솎아내는 데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적폐청산은 구호로는 듣기 좋지만 국가정책의 시각으로 보면 모호함이 가득하고 자의적 판단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위험하기 그지없다.
‘나라 바로 세우기’라든가 ‘사회악 철폐 운동’ ‘반듯한 나라 만들기’ ‘가면 쓴 악의 무리 뿌리 뽑기’로 이름을 바꿔도 대략 비슷한 의미로 읽힌다. 정책의 이름은 대체하기 어려워야 콕 집은 맞춤형이지 이래서야 창조경제와 비슷한 수준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적폐청산을 반대하기는 어렵다. “부정부패와 불법, 음습한 관행을 인정하자는 거냐?”는 거친 반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부정을 옹호하자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김정은도 정의를 말하는 시대다.
블랙리스트는 그것대로, 댓글 조작은 또 그 사안대로 처리하면 될 일이다. 이런저런 문제점에 적폐라는 이름을 붙이는 건 정권이 하는 ‘정의로운 개혁’에 반대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려는 장치로 보일 뿐이다. 누가 아이디어를 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치적 계산으로만 보면 감탄이 나온다.
적폐청산 구호 앞에 국가정보원의 메인 서버가 열려 그늘에 있어야 할 온갖 정보가 빛을 봤다. 국군 사이버사령부는 존재 가치 자체가 없는 조직으로 전락했다. 두 기관이 댓글이나 달고 있었다는 사실은 한심하지만 그게 서버가 열리고 존재 가치를 부정당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다. 댓글 문제로 당시 국방장관과 국정원장이 줄줄이 조사받고 촉망받던 검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금이야 거침없이 정의로운 적폐청산이 착착 진행되겠지만 종기를 도려내려다 사람 잡는 일 같은 온갖 부작용이 훗날 또 다른 이름으로 도마에 오르지 않을까 걱정이다. 대통령 인기가 여전히 높고 전 정권의 불의에 분노하는 마음이 온 나라를 뒤덮었다 하더라도 환부를 도려낼 땐 큰 칼이 아니라 정교한 메스를 잡는 법이다.
명분과 구호에 사로잡혀 실체를 보지 못한 채 정치적 이해득실에 더 무게를 둔다면 그 결과는 알뿌리 파동과 별반 다르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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