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명희]G20 패션 빅매치 감상법

  • 동아일보

김명희 여성동아 차장
김명희 여성동아 차장
각국의 정치 리더와 퍼스트레이디들의 옷차림을 다룬 뉴스를 눈여겨보게 된다. 정치는 자신을 드러내고 차별화함으로써 선택을 받는 것이고 패션은 자신의 캐릭터, 원칙, 신념을 시각화해서 대중에게 보여주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정치인들의 패션에서 단순히 아름답고 멋진 것을 넘어 거기에 담긴 메시지까지 읽고자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순실표 의상’에서 비롯된 트라우마 때문에 애써 외면하려 해도 정치인들의 옷차림에 자꾸 눈길이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요즘 패션계가 주목하는 정치권의 유명 인사는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다. 모델 출신인 그녀는 몸매가 드러나는 여성스러운 스타일의 의상을 즐겨 입는데, ‘영부인 스타일의 교과서’라는 반응이 많다. 하지만 패션쇼장의 옷을 그대로 공수해 왔다거나, 백악관을 배경으로 한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에서 대통령 부인으로 등장하는 여배우의 스타일을 그대로 모방한 것 같다는 혹평도 있다.

멜라니아 여사는 디자이너들의 뜨거운 감자이기도 하다. 지금 패션업계는 그녀에게 의상을 제공(판매)하는 디자이너와 그렇지 않은 디자이너로 양분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디자이너 톰 포드, 마크 제이컵스 등은 멜라니아 여사에게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밝힘으로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노선에 반대표를 던졌다. 반면 ‘퍼스트레이디 마케팅’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 돌체앤가바나다. 자사의 ‘친(親)트럼프’ 노선에 소비자들이 반발하자 돌체앤가바나는 ‘우리가 싫으면 우리가 디자인한 보이콧 셔츠를 입으라’며 ‘#BOYCOTT DOLCE&GABBANA’라는 문구를 새겨 넣은 티셔츠를 출시하고 꿋꿋하게 제 갈 길을 가는 중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24세 연상 부인 브리지트 트로뇌 여사는 짧은 기간에 ‘프렌치 시크’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그녀가 즐겨 입는 미니스커트, 스키니진, 가죽 바지는 기존 영부인 패션의 룰을 완전히 깨는 것인데, 그런 점 때문에 트로뇌 여사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당당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좋은 예가 됐다. 그녀는 “나이를 뛰어넘음으로써 모든 여성에게 새로운 문을 열어주었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웬만해선 단색의 바지 정장을 포기하지 않아 ‘패션 테러리스트’라고 불리지만, 패션에 관한 한 가장 큰 감동을 준 정치인 역시 메르켈 총리다. 그녀는 출장 때마다 항상 검은색 정장을 싸들고 다닌다. 자국민이 관련된 만일의 사고나 비극적 상황이 발생할 경우 언제 어디서든 바로 달려가 예를 표하기 위해서다. 어떤 순간에도 국가 원수로서 책임을 다하겠다는 자세야말로 메르켈 총리가 12년간 흔들림 없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 비결일 것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미국 방문을 통해 ‘패션 외교’ 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옷감으로 제작한 쪽빛 두루마기, 버선코 모양의 구두, 분홍색 누빔 재킷 등은 한국적이면서도 깊고 풍부한 스토리를 갖고 있다. 요즘 유행어 중에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말이 있지만 메르켈 총리와 김정숙 여사는 자세와 마음으로 패션을 완성한 케이스다.

마침 7일(현지 시간)부터 독일 함부르크에서는 독일은 물론이고 미국 프랑스 한국 등 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이 참석하는 정상회의가 열린다. 글로벌 패션 빅 매치를 지켜보며 당신의 마음을 움직인 정치인에게 투표를 해보는 건 어떨까.

김명희 여성동아 차장 may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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